“아이들이 시설을 나가서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건강하게, 직업을 가지고, 세금 내면서 사는 것. 이것이 저희가 바라는 ‘완전한 성공’입니다.”
김자경 ‘나사로 청소년의 집’(이하 나사로) 원장은 24년간 청소년들을 위해 일할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서 7년 전쯤 음식을 훔치다 나사로에 입소했다는 한 아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가 말하는 ‘완전한 성공’의 모범 사례였다.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작은 원룸에 살던 그 아이는 나사로에서 1년간 머물렀고 퇴소 이후엔 빵집에서 3년간 일하며 돈을 벌며 생활비를 보탰다. 김 원장은 “이런 아이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도우면서 보람을 느낀다”며 미소를 지었다.
비행(非行)이 비행(飛行)이 되는 집, 나사로
경기도 양주에 있는 나사로는 수도권이나 대전 등지에서 절도나 폭행 같은 범죄를 저질러 ‘6호 처분’을 받은 10대 여학생 40명이 머무는 공간인데, 여기에서 우선 6호 처분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우선 소년법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 법령에 따르면 소년보호처분은 1~10호로 나뉜다. 1~5호 아이들은 보호관찰이나 사회봉사활동 같은 비교적 가벼운 처분을 받고 7~10호로 규정되면 소년원이나 전문치료시설로 보내진다. 즉, 6호는 이들 단계의 사이에 놓여 있다. 일반적으로 소년원에 갈 만큼 심각한 비행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위기 가정 자녀여서 별도의 보호 조치가 필요한 경우 6호 처분이 내려지곤 한다.
법무부의 ‘2024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6호 처분을 받은 아이는 1662명에 달한다. 이들은 법무부가 지정한 전국 8곳의 6호 시설로 송치되는데 나사로도 그중 하나다. 6호 시설은 소년원과 달리 민간 운영 시설이다. 그렇기에 시설 내 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을 각 시설 운영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취재진이 나사로를 찾은 것은 지난 7일이었다. 양주의 깊은 산골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벽에 걸린 대형 화이트보드였다. 특정 연애 프로그램이나 자극적인 예능 프로그램 시청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계단 벽면엔 ‘근면’ ‘배려’ ‘용기’ 등 소년들이 직접 만든 단어 카드가 붙어 있었는데, 카드마다 단어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눈길이 갔던 것 중 하나는 학생들이 복도에 붙인 메모들이었다. “꿈을 알고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말씀을 주시고 저를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은 생활지도사 간호사 영양사 등 총 27명의 지도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들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오전 10시가 되자 앳된 얼굴의 아이들은 이른바 ‘긍정 선언’을 외치며 본격적인 일과를 시작했다. 12시까지 학과 수업을 들은 아이들은 점심시간이 되자 함께 모여 밥을 먹었다. 반찬은 미역 줄기, 햄계란부침, 도토리묵. 한 선생님은 “몇몇 아이들은 입소 초기 사회에서 먹는 자극적인 음식과 거리가 멀어 이곳 음식을 꺼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낮 1시부터는 본격적인 오후 일과가 시작됐다. 자격증 수업과 운동 시간, 그다음엔 자습 시간이었다. 일과가 끝나는 시각은 오후 5시30분. 저녁 식사를 한 아이들은 생활지도원 3명의 감독 아래 자유시간을 보냈다. 생활지도원 3명은 층별로 구역을 나눠 소년들을 관리·감독한다고 했다.
나사로에서 만난 사람들
“아이들이 만난 어른 중에서 정말 괜찮은 어른, 좋은 어른으로 남으면 좋겠어요”나사로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으로 남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고 했다. 1993년 나사로와 처음 인연을 맺은 김 원장은 31년간 이곳에서 만난 수많은 아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을 묻는 말에 2010년 입소해 이곳에서 4년을 살았던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태어나자마자 친엄마에게 버려진 아이였어요. 양부모가 키웠지만 이들 부부도 갈라서면서 결국 양아버지가 아이를 키웠죠. 하지만 양아버지가 다시 결혼을 하고 새로운 어머니는 아이를 함부로 대했어요. 아이는 결국 13세 되던 해에 가출했고요.”
아이는 나사로에서 머무르는 4년간 5번의 이탈을 시도했다. 김 원장은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라 갈 곳이 없어서 4년이나 있는 건데 얼마나 힘들었겠냐”라며 “마지막 이탈 때 아이를 찾아온 뒤 ‘성인이 되면 네가 있고 싶어도 데리고 있을 수 없다. 마지막 1년만 잘 버텨보자’고 했더니 아이가 마음을 잡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아이가 성인이 되고 시설을 퇴소하자 사비로 보증금을 마련해 원룸을 구해줬다. 결혼할 땐 혼주 자리에 앉기도 했다. 이 아이는 국비로 지원되는 간호학원을 졸업해 현재 한 대학병원 간호사로 일하며 또 하나의 ‘완전한 성공’을 보여줬다.
나사로에서 3년간 생활지도원으로 근무한 박지혜(46)씨는 원래 가정주부였다. 장애인복지관이나 보육원 등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박씨는 사회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고 관련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얼마 전 한 아이가 퇴소를 하며 동화책을 만들어주고 간 일화를 전해줬다. 아이는 자신을 동화 속 병아리에, 박씨를 토끼에 각각 빗대어 표현했다. 처음에 시설에 온 병아리는 성격이 모나 머리털이 뾰족하게 서 있었지만 토끼가 이를 쓰다듬어줘 동글동글한 병아리가 됐다는 내용이었다.
“토끼랑 헤어지는 게 너무 슬프지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이 감동적이더군요. 사실 아이를 많이 혼냈었는데 그게 자신을 싫어해서가 아니었다는 것을, (제가) 본인을 생각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뿌듯했어요.”
박씨에게 나사로는 직장 이상의 의미를 띤 곳이었다. 그는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아이들이 말을 잘 듣고 있을까, 서로 싸우지는 않을까, 퇴소한 친구들은 왜 연락이 안 될까, 온통 아이들 생각뿐이다”며 “언젠가 아이들이 나를 생각할 때 정말 괜찮았던, 좋은 어른으로 기억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도원들의 마음이 전해졌을까. 시설에서 만난 A양(17)은 어린 동생들에게 ‘좋은 언니’가 돼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시설 체류 기간을 연장한 아이 중 한 명으로 나사로의 최고참이었다. A양은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부모님의 무관심 때문일 때가 많다. 그런 동생들을 보듬어주는 좋은 언니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B양(18)은 지난해 9월 10일 입소한 아이였다. 그는 이곳에서 지내며 힘든 순간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일기를 쓴다고 했다. B양은 “오늘 하루 동안 화가 났거나 기뻤던 걸 기록하는 감정 일기, 전체적인 일과를 정리하는 일기 2개를 쓴다. 여기서 지내면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B양의 장래희망은 네일숍을 차리는 것이었다.
6호 시설에 관심을
나사로 아이들은 가정 문제 때문에 입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시설에서 잘 교화가 돼 퇴소하더라도 가정 문제 탓에 다시 일탈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김 원장은 “아이들의 삶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내가 이 환경 속 주인공이었다면 (내가) 살아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생활지도원 이태림(49)씨는 “아이들의 사연을 안 뒤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다. 아이들은 밖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이곳에서 받으며 마음을 표현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들에게 엄마라고 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고 덧붙였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6호 처분이 종료되면 작은 그룹홈처럼 청소년 보호 업무를 해주는 곳이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선영 한세대 교수는 “6호 시설은 시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판사나 시설장도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다시 사회로 내보내야 할 때가 많다. 출소한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편적으로 분산된 6호 시설을 비롯한 소년 사법제도가 종합적으로 통일될 필요도 있다. 현재 아동·청소년 업무를 담당하는 곳은 크게 교육부 여성가족부 법무부 3곳이다. 학교 내 아이들은 교육부에서 담당하지만 학교에서 이탈한 아이들의 업무는 ‘위기 청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여성가족부 산하로 넘어가고 범죄를 저지른 아이 중 일부와 관련된 사안은 법무부가 처리한다.
이 교수는 “소년범 문제는 아동·청소년의 발달과 연관된 하나의 덩어리기 때문에 6호 처분에 대한 업무는 법무부만의 업무가 아닌 종합적 시각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6호 시설 운영 주체, 민간 정부, 지자체에서 더 체계적인 운영 관리 및 사회적 관심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양주=글·사진 김동환 박상희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