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송혜교는 한 번도 톱스타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가을동화’(2000), ‘올인’(2003), ‘풀하우스’(2004), ‘그들이 사는 세상’(2008), ‘태양의 후예’(2016) 등 멜로 드라마로 주목받아 온 송혜교가 연달아 의외의 선택으로 놀라움을 안기고 있다.
영화 ‘검은 수녀들’로 11년 만에 관객들 앞에 선 배우 송혜교를 2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났다. 송혜교는 “다른 연기에 대한 갈증, 억누르고 있던 감정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며 “‘더 글로리’와 ‘검은 수녀들’을 촬영하면서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을 앞두고는 ‘해보지 않은 연기인데 내가 잘 표현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막상 현장에선 시원하게 잘 나왔다. 사이다 원샷한 느낌이었다”는 소감을 밝혔다.
‘검은 수녀들’은 위기에 빠진 소년 희준(문우진)을 구하기 위해 금기를 깨는 수녀 유니아(송혜교)와 미카엘라(전여빈)의 이야기다. 송혜교는 처음 도전하는 오컬트 장르에서 지금껏 선보인 것과는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는 영화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더 글로리’ 다음 작품으로 멜로를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송혜교는 “비슷한 연기를 여러 번 하다보니 내가 내 연기를 보는 게 재미가 없었고, ‘내가 봐도 재미없는데 시청자들은 얼마나 재미가 없을까’ 한참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마침 그 때 ‘더 글로리’를 만났다. 송혜교는 “처음 해보는 복수극이 어려웠지만 오랜만에 ‘연기하기가 신난다, 현장이 정말 좋다’고 느꼈다. 그러다 만난 게 ‘검은 수녀들’”이라며 “멜로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게 해준 감사한 작품들이지만 ‘더 글로리’ 이후 그간 해보지 않았던 캐릭터에 대한 욕심히 서서히 생겼다. 사이코패스, 악역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자유분방한 수녀 유니아는 담배를 피우고, 거친 말들을 내뱉기도 한다. 송혜교는 “배역 때문에 6개월 간 흡연을 연습했다. 작품을 위해 수녀님들의 자문을 구하면서 영화에 대해 설명했더니 ‘우리와는 전혀 다른 수녀네요’라며 당황하시더라”며 “유니아는 교단에서 하지 말라는 것만 하는 반항기 있는 인물이면서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졌다. 우리가 늘 봐 온 수녀와 차별화된 느낌이 새롭고 매력적이었다”고 돌이켰다.
연기도, 사생활도 대중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 연예계에서 그는 30년 가까운 시간을 버텼다. 숱한 루머에도 크게 흔들리거나 나서서 해명하지 않았다. 송혜교는 “내 직업은 많은 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도 없다”며 “큰 일이 터졌을 때 더 조용해지고 담담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겠지 하고 오히려 나만의 휴식시간으로 삼자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그간 하지 않았던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도 등장해 화제가 됐다. 그는 “신비주의를 의도한 건 아니다. 과거엔 이렇게 대중 앞에 공개되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이제 감춘다고 다 좋은 건 아닌 시대가 된 것 같다”며 “20, 30대엔 뭐든 치열하게 했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욕심도 덜하고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유튜브를 통해선 젊은 친구들이 다가와 준 느낌”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만의 ‘롱런’ 비결은 뭘까. 송혜교는 “다 좋은 작품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 혼자선 여기까지 못 왔을 것”이라며 “여전히 배워가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