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치료 동기가 없는 게임 중독 청소년

입력 2025-01-22 09:58

광고계에는 ‘스테이크 말고 지글거리는 소리를 팔라’는 이야기가 있다. 감각적인 자극을 통해 강하게 욕구나 동기를 증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상징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직접 스테이크를 맛보지 않더라도 스테이크를 굽는 지글거리는 소리를 통해 냄새, 맛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면서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강한 동기가 유발된다.

남자 중학교 3학년생 B는 게임에 중독되어 있다. 밤새 잠도 안 자고 게임을 하다가 아침에 일어날 수 없다. 학교에 지각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럴 때 부모님이 잔소리하면 화를 내고 문을 꽝 닫고 들어가거나 물건을 부수기도 한다. 게임을 하는 중에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심하게 낸다. 자판을 부수는 등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물론 이런 행동을 한 후에는 후회도 하고 내심 공부도 걱정이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이런 내색을 하지 않고 반항만 하게 된다.

사실 게임중독을 비롯한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성중독 등 ’중독‘ 증상은 인류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몇 가지 병 중의 하나이다. 난치성 질환이다. 왜냐하면, 환자들 스스로가 질병임을 인정하지 않아 치료의 동기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료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 치료의 절반쯤은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동기 부여를 함에 있어 ‘중독이 얼마나 삶을 망가뜨리고 건강을 해치고, 가족들의 삶까지 황폐화하는지’ 등 인지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느꼈던 긍정적인 과거의 경험을 다시 되살리고 상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B는 어릴 적에는 블록 만들기를 매우 좋아했다. 블록을 새로 사주면 몇 시간이고 끈기 있게 앉아서 그것을 조립하고 완성해 내곤 했다. 또 기발하게 창의적으로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낸다. 그래서 주위에 찬사도 받고 가족들도 깜짝 놀라서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B로 하여금 이런 기억을 되살리게 하고 이때 어떻게 블록 만들기에 집중할 수 있었는지를 물어본다. 그리고 더 자세히 그때의 감각과 느낌에 주목하도록 질문을 하니 ‘일단 재미있고, 만들고 나서 엄청 뿌듯하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이 깜짝 놀라고 칭찬해 주거든요’ 이때를 기억하고 몸에서 느꼈던 감각(휘둥그레진 사람들의 눈, 환호와 박수 소리,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느낌 등등)을 되살리게 하는 거다. 그리고 지금은 학교도 매일 지각하고 게임만 하니 문제아로 치부되는 B이지만 “너에게는 성취감이 굉장히 중요하고 뿌듯하게 느끼는 감정이구나‘라고 알지 못했던 B만의 가치를 일깨워준다.

아마도 성취감이 중요한 B에게 점수로 기록되는 게임 또한 성취감을 느끼는 동력이 되었을 수 있다. 공부나 다른 재능으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많은 청소년이 게임에 빠져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게임을 통한 성취감의 효과가 지속하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자책감에 빠지게 되는 차이가 있다는 거다. 물론 이 차이 또한 스스로 깨닫게 도와줘야 한다.

‘성취감이 중요한 너에게 게임은 그것을 느끼기에 중요한 도구가 되었겠네. 게다가 재미도 있고’ 먼저 게임을 하는 것을 수용해주자. 이후 ‘그 성취감이 게임이 끝나고 난 후엔 어떠니? 다음날에는 어떠니?’ 라고 질문해 보자. 이렇게 스스로 그 장기적인 결과에 접촉해 보도록 도와주는 것이 게임 중독에서 벗어날 수 하는 방법이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