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마틴 루서 킹 목사의 꿈 실현해야” 한다던데…과연?

입력 2025-01-21 16:34 수정 2025-01-21 17:31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JD 밴스(왼쪽) 부통령과 함께 미국 워싱턴DC의 캐피털원아레나에서 열린 실내 대통령 취임 퍼레이드 행사에 참석해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제47대 대통령에 재선돼 20일(현지시각) 공식 취임함에 따라 앞으로 그가 펼칠 정책이 한국교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교계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향후 행보가 한국교회의 보수화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또 앞선 정부보다 더 성경적 가치관을 지켜나가는 쪽의 정책을 펼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기독교 정신을 따랐다기보다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섞여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21일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미 워싱턴DC 연방의회의사당 로툰다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 선서로 공식 임기를 시작했다. 4년 만에 백악관으로 다시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이 미국 개신교 역사의 상징적 인물인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기념일인 이른바 ‘MLK데이’에 진행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오늘은 해방의 날”이라고 선포하며 앞선 바이든정부가 취했던 동성애 옹호 정책 등 편향되고 반성경적인 정책 노선과는 결별할 뜻을 시사했다.

특히 그는 “그동안 미국은 급진적이고 부패한 기득권이 부당한 이득을 취했고, 너무 오랫동안 불법적으로 연방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눌러왔다”며 “헌법과 하나님을 잊지 않을 것이며, 다양성·공정성·포용성(DEI) 프로그램을 제거하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두 가지 성별만 인정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어 “모든 정부의 검열을 중지하고 표현의 자유와 권리를 미국 시민들에게 다시금 돌려줄 것이다”며 “미 정부는 기존의 정책을 철폐하고 인위적인 사회 정책을 통해 인종과 젠더 정책으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즉시 중지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트럼프(왼쪽) 대통령이 이날 제47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미국 연방의회의사당 로툰다홀에 입장해 조 바이든 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이날 취임식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받쳐 든 두 권의 성경책을 앞에 두고 오른손을 들어 취임 선서를 했다. 한 권은 1861년 3월 4일 제16대 대통령 취임 선서 때 사용된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성경책이고 다른 한 권은 트럼프 대통령이 1953년 교회학교 졸업 때 어머니에게 받은 선물로 표지에 그의 이름과 받은 시기가 적혀 있다.

이어 빌리그래함전도협회 프랭클린 그래이엄 목사가 기도자로 나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를 축복했다. 이는 4년 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실베스터 비어만 베델AME교회 목사가 드린 기도와는 다른 내용이라 주목받았다. 4년 전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감리교 목사인 비어만 목사는 기도를 인도하며 마지막에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양한 종교의 이름으로(Strong name of our collective faith)”라며 기도를 마쳤다. 당시 그의 기도에 적지 않은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는 실망의 목소리가 나왔다.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라고 말하기 무색할 만큼 달라져 버린 미국 기독교 신앙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취임식에서 그래이엄 목사는 “우리가 누리는 보호와 자유에 감사드리며 우리가 당신에게 등을 돌린다면 미국은 다시는 위대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왕의 왕, 주의 주, 나의 구세주,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멜라니아 여사 손에는 성경책 두 권이 들려 있다. 워싱턴=AP/뉴시스

국내 교계 전문가들은 트럼프정부가 이처럼 보수적인 기독교 신앙을 계속해서 표명하는 것이 한국교회 보수화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안건상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낙태 금지 등 성경적 가치관에 들어맞는 트럼프 행정부 정책이 한국교회의 윤리적 보수성 강화와 정책 요청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미국 교계와 시민사회에선 이미 여론이 더 양극화하고 있는 만큼 사안별 찬반 논쟁이 정치적 충돌로 번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백종국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공식 석상에서 성경을 인용하거나 신앙을 고백하는 등 행보에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기독교 가치를 회복시킬 거란 기대가 나오고 있다”면서도 “그의 신앙적 ‘레토릭’(웅변술)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윤리보다 개인의 정치적 성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부덕한 경영과 성적 방종으로 민사소송 제기된 이력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랑, 공평, 정직 등 복음의 가치와 거리가 먼 사람이다”며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마친 후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을 가리키며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한국교회가 지녀야 할 자세에 관해 안 교수는 “교회는 정치인의 윤리적 보수성이나 진보성에 영향을 받기보다 이를 넘어서는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고 실천해야 한다”며 “참된 교회의 모습을 갖추지 못했을 때 교회는 정치 갈등에 휘말릴 수 있는 만큼 교회는 정치인의 목소리보다 하나님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