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나누는 장기기증을 통해 더 행복해졌습니다.”
21일 서울 종로구 YMCA 2층 대강당에서 열린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 창립 34주년 기념식’에서 릴레이 신장이식에 기여했던 백창전(66)씨는 이렇게 말했다. 평생 사회복지사로 살아온 그는 “누군가를 돌보고 배려하는 직업 덕분에 자연스럽게 나누는 삶을 살아왔고, 그것이 나의 행복이었다”며 “생명나눔 활동을 통해 내 자신이 더 행복해졌다”고 고백했다.
2009년 얼굴도 모르는 타인을 살리고자 했던 백씨의 순수 신장 이식으로 시작된 릴레이 신장이식은 4명의 생명을 살리는 길로 이어졌다. 릴레이 신장이식은 가족 중 기증자가 있어도 혈액형과 조직형이 맞지 않을 때, 장기기증본부를 통해 비혈연 기증자와 수혜자 간 교환이식을 연속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한 환자가 기증받은 후 그의 가족이 다른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하며 과정이 반복된다.
마지막 릴레이 주자였던 유영서(72)씨는 아내 정영희(67)씨를 위해 신장을 기증했다. 그는 “아내가 신장이식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을 듣고 절망했지만, 교환 이식을 통해 새 생명을 선물할 수 있었다”며 “요즘은 아내와 ‘감사’라는 말을 달고 산다”고 말했다. 정 씨는 “남편이 자신의 몸 한쪽을 희생하며 나를 살리려 했던 마음에 감동했다”며 “서로를 돕고 살아가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짝지어주신 이유를 깨달았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생존 시 신장기증인 ‘리빙도너’ 40명과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도너패밀리’ 30명을 포함해 회원 100여 명이 참석했다. ‘생명나눔 34년, 사랑으로 잇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주제 아래 생명을 잇는 감동적인 경험담이 이어졌다.
특히 가족이 함께 생명나눔 운동에 동참한 사례들이 나눠졌다. 백홍선(65) 대구활천교회 목사는 간염 병력을 극복하고 신장을 기증했으며, 그의 동생 백정선(62)씨도 동참해 국내 유일 형제 신장기증 사례를 만들었다. 부부가 함께 신장을 기증한 김근묵(75)씨와 이경희(73)씨는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은 장기기증이었다”고 말했다. 엄해숙(72)씨와 그의 아들, 노명환(89)씨와 그의 아들처럼 부모와 자녀가 세대를 이어가며 나눔을 실천한 경우도 있었다.
도너패밀리의 이야기도 감동을 더했다. 2008년 세상을 떠난 뇌사장기기증인 김유신 경찰관의 아내 정선자(62)씨는 “우리 삶은 먼저 떠난 이들이 원했던 삶의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들이 하고 싶었던 것들을 기억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나누고 봉사하며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2020년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은 아들의 장기기증을 결정한 박병호(57) 천안명문교회 목사는 “아들은 7명에게 생명을 나누고 하나님 나라의 선교사가 됐다”고 말했다.
1부 감사예배에서 ‘장기기증은 참 성찬 예식입니다’(마 26:26~29)라는 주제로 설교한 이성희 연동교회 원로목사는 “성찬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신 사랑의 선언”이라며 “신장을 통해 이웃에게 생명을 나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지는 행사에서는 한국카테다제약과 할렐루야교회 등 장기기증활성화에 기여한 단체와 개인에게 감사패가 수여됐고, 배우 황보라씨와 성우 김보민씨가 단체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국내 최초 순수장기기증인 박진탁 목사가 1991년 창립한 단체로 이후 122만여 명의 장기기증 희망등록자를 모집하며 국내 장기기증운동을 선도해왔다. 생명나눔 예배, ‘9월 9일 장기기증의 날’ 캠페인, 신장이식 결연사업, 뇌사 기증인 유가족 예우 사업, 어린이·청소년 생명나눔 교육, ‘제주 라파의 집’ 운영 등을 통해 성숙한 생명나눔 문화를 조성해왔다.
박 목사는 “생명 나눔의 시간이 벌써 34년이 흘렀다”며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인 장기기증자들과 함께 앞으로도 성숙한 장기기증 문화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