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저는 매주 낙도에서 전도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 글을 읽어줄까요. 아마 많은 이들이 관심이 없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부족함이 많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가려고 합니다. 복음을 듣고 변화돼가는 섬사람들이 이야기가 잘 전달되어 복음을 전하다가 상처를 받거나 지친 분들께 위로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에 나오는 보리떡을 늘 생각합니다. 보리떡은 배부른 사람이나 먹을 게 많은 부잣집에는 간식으로도 먹지 않는 음식입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에겐 귀한 양식이 됩니다. 전도에 쓰이는 시간과 물질도 마치 보리떡같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사용돼 영혼을 살리는 양식이 되기를 늘 기도합니다.
아직도 전국 수많은 섬 가운데는 열약한 여건으로 60년대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곳이 제법 많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노록도 할머님댁도 그런 상태였습니다. 보일러 시설이 없어 겨울에는 아궁이에 군불을 때야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땔나무가 넉넉해야 부자가 된 듯 든든함과 풍요로움을 느끼는 그런 집입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더 들어보면 할아버지께서 15년 전 천국에 가실 때까지 10년간 당시 노를 저으며 배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토요일이면 늘 다음 날 주일에 교회 가기 위해 배를 물때에 맞춰 옮겨 놓고 예배 출석을 충실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혼자 되신 할머니는 자연히 교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통해 이미 믿음의 기초를 든든히 세워주셨고 여호와의 이레로 할머님댁을 성전 삼아 교회를 시작한 결과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지난해 초겨울엔 할머니댁에 겨울 준비를 해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싱크대와 온수기를 설치하기로 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울산 동부교회 전도팀 5분이 힘을 써주셨습니다. 그분들은 개인적으로 30만원씩 보리떡 같은 헌금을 모아주셨고, 시간을 내어 2박 3일 일정으로 500㎞의 먼 거리를 비싼 교통비와 뱃삯을 부담하면서 달려와 현대식 부엌에 사용될 물품을 우리 교회와 같이 부담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아흔이 되신 할머님께서 평생 사용하지 못한 온수가 펑펑 나오는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혼자 되신 할머니는 당신이 사시는 동안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걱정을 끼치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주관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전화하면 항상 “괜찮다. 잘 있다. 걱정하지 말아라” 하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재래식 부엌을 고집하며 지금껏 사셨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부엌이 없어도 된다며 손사래를 치며 그렇게 말리시던 할머니는 봉사팀들이 들어와 주님의 마음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늙은 내가 예수 믿고 축복을 받네” 하셨습니다. 요즘 싱크대 없는 집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섬 노록도 할머님댁은 유일하게 그 흔한 싱크대가 없었고 그렇게 잘 마무리된 모습에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은 마음이 활짝 열리면서 교회를 귀하게 여기게 됐습니다.
유난히도 추운 이번 겨울을 보내면서 주일날 할머님댁에 예배드리려 가면 불편한 게 없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내가 새벽에 일어나 수도꼭지를 틀면 뜨거운 물이 나와 손등에 전해지는데, 마치 하나님의 사랑이 따뜻하게 전달되는 것 같다”며 주름 가득하신 할머니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저는 그 미소 깊은 곳에서 보리떡을 축복하신 예수님의 모습도 바라봅니다.
섬에서 살아가는 어부들을 전도하면서 아이가 보리떡을 주님께 드린 말씀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여기는 낙도입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