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장관 지명자들이 대북 정책 변화를 강하게 시사하고 나서면서 한반도 안보 상황도 일대 변화가 예상된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는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불렀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는 “어떤 제재도 김정은이 (핵) 능력을 개발하는 것을 못 막았다”며 북한 정책 재검토를 시사했다.
미국 내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인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지난 16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국방장관 지명자의 발언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recognition)’을 한 것으로 간주돼서는 안 된다”며 “그의 발언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위협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며, 필요하다면 북한의 (핵을) 개발하는 능력을 억제하고 무력화시키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고 말했다.
사일러 고문은 이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바람직하고 추구해야 목표이지만 그 첫 단계는 핵발전 중단”이라며 “가능한 한 빨리 핵 프로그램의 추가 발전을 중단시키려는 노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스몰딜’이라고 평가되는 핵 동결 협상과 ‘빅딜’인 CVID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북한은 ‘핵보유국’ 발언이 한국 내에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의 발언이 놀라운 것은 아니다. 국방장관 지명자의 발언이 북한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정의된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종류의 인정으로도 간주해서는 안 된다. 물론 북한은 6번의 핵실험을 주장했고, 이를 운반할 수 있는 미사일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방장관 발언을)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단순히 수용하고 그 상태로 넘어가려 한다는 신호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본다. 오히려 국방장관의 발언은 북한 핵 프로그램의 위협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 것이며, 필요하다면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을 억제하고 무력화시키는 데 중점을 둘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대북정책에 대한 더 넓은 관점의 재검토를 시사했다.
“모든 대통령은 정책 검토를 한다. 나는 오바마 팀에서 일했는데 우리는 몇 년 동안 정책 검토를 했고, 바이든 팀도 정책검토를 했다. 모두 정책검토를 한다고 해서 답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특히 2008년 6자 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이 비핵화를 추구하는 데에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면서, (대북) 옵션들이 어느 정도 명확하고 정의되어 왔다. 우리는 외교적·경제적·군사적 옵션들을 계속 검토해 왔으며,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검토에서도 예상할 수 있는 방향이다.”
-루비오 지명자가 말한 재검토가 ‘CVID’ 대신 핵 동결이나 군축으로 방향을 트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CVID는 바람직하고 추구해야 할 목표다. 그리고 CVID의 첫단계는 언제나 (핵 활동) 중단(halt)이다. 하지만 나는 김정은이 현재 그의 메시지를 고려할 때 어떤 형태의 동결(freeze)도 수용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의 메시지는 북한이 합법적인 핵보유국이며 그렇게 인정받아야 하고, 핵 프로그램의 어떤 부분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핵 프로그램의 추가 확장을 가능한 한 빨리 중단하려는 노력을 추진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최종 목표 상태(end state goal)는 아니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가까운 시일 내 정상회담을 열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지.
“전화 통화 한두 번이나 두세 번의 서신 교환, 어쩌면 제3국에서의 회담 같은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다. 트럼프가 회담을 위한 다양한 방식에 열려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트럼프 김정은의) 톱다운(top-down) 접근법이 (실무 협상 중심의) 바텀업(bottom-up) 접근법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증거는 없고, 북한이 입장을 바꿨다는 증거도 없다.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의 회담이나 서신 교환, 전화 통화를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의미 있는 대화가 될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치적 혼란이 한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워싱턴 조야에서는 현재 야당인 민주당이 ‘한·미·일’ 삼각 협력에 부정적이라는 우려도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국회를 통과한 탄핵 소추안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헌법 절차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야당이 낸 1차 탄핵안에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이 중국 러시아 북한을 자극하고 대한민국 국가안보에 해악을 끼쳤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윤석열정부의 한미동맹 강화와 확장억제 강화, 한미합동군사훈련 등이 평양과 베이징, 모스크바를 불쾌하게 했고 이것이 한국 안보에 해롭다는 생각은 한반도 주변 안보환경에 대한 잘못된 시각에 불과하다. 그런 비난은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다. 야당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해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를 실제로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한국을 머니머신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당선 이후에는 한국에 대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의 전략인가?
“트럼프는 한국에서 진행 중인 절차를 존중하고 이 문제에 대해 당선인이 다른 언급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지금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취임 뒤) 며칠 또는 몇 주 안에 언급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트럼프는 협상가라는 점을 모두가 알아야 한다. 나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분담금 협상을 위해 한국에 있었고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트럼프에게도 한국이 국가 안보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상기시켜야 한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재배치나 철수를 압박할 수도 있을까?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사례처럼 (미 대통령이) 미군 병력의 적정 수준을 정기적으로 살펴본 역사가 있다. 트럼프도 한국에 얼마나 많은 미군이 있고, 왜 거기에 있는지 질문할 것으로 생각한다. 휴전 뒤 70년이나 지났고 경제적으로 탄탄한 한국과 같은 동맹국에 왜 아직도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는지 물을 것이다. (한국 정부 내)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미군이 왜 한국에 있는지에 대한 변호를 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또 동북아에서는 중국이 가장 중요한 안보 우려로 간주돼야 한다. 대만 무력 통일 시도 등 중국의 우발 상황과 관련해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트럼프 팀에게 어느 정도 설득할 수 있느냐에 따라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의 가치가 트럼프에게 더 높이 평가되고 이해될 수 있다.”
-북한이 핵 능력을 고도화할수록 한국에서도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자체 핵무장 여론이 높아질 수 있다.
“지금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으로 북한은 억제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국 국민을 안심시키는 한편, 북한이 한국을 침략할 경우 미국의 확장억제가 강력하다는 신호를 정기적으로 보내왔다. 오늘 핵무기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면 한반도에 핵무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나 전술핵무기 재배치 논쟁 자체는 환영한다. 북한 핵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논의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특히 (한국 자체 핵무장론자인) 엘브리지 콜비가 국방부 정책차관에 임명됐으니, 그의 임무 범위 내에 (자체 핵무장 논의가) 정확히 포함될 것이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