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통제 상징 ‘보도검열관실’ 복원 논란…옛 전남도청

입력 2025-01-19 13:03 수정 2025-01-20 09:04

1980년대 모습대로 복원 중인 5·18 최후 항쟁지인 옛 전남도청에 언론통제 상징인 ‘보도검열관실’을 되살려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총탄에 맞아 숨진 1979년 10·26 사태에 따른 비상계엄 선포 이후 1981년 1월 24일까지 신문, 방송, 통신 기사를 사전 검열한 계엄사령부의 언론탄압 폭거를 후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전남지역 퇴직 언론인 모임인 광주전남언론인회는 19일 “당시 계엄사령부의 폭압적 언론 통제와 보도 검열의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보도검열관실을 복원해 전시·교육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 민주화 분수령이 된 5·18 최후 항쟁지 옛 전남도청에서 언론 보도를 사전 검열한 반민주적 작태를 후대에 전하기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당시 계엄사령부 전남북계엄분소는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무차별 구타, 숱한 인명피해 등의 참상을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도록 강제했다.

‘K-공작계획’으로 명명한 언론통제 지침을 작성한 뒤 보도내용을 일일이 검열·통제하고 ‘보도검토필’이라는 도장을 찍은 기사만 신문에 싣거나 방송하도록 허용했다. 이후에는 비판적 언론인 해직과 언론사 통폐합을 단행했다.

민주주의 기본 요건인 여론 형성을 총칼로 틀어막고 언론 자유의 숭고한 가치를 훼손했다는 의미다.

1년 3개월여간의 검열을 통해 계엄사령부가 삭제한 기사는 총 2만7058건(전면 삭제 1만1033건·부분 삭제 1만6025건)에 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광주·전남지역 언론인들도 옛 전남도청에 설치된 보도검열관실에서 날마다 신문지면 초안 등에 대한 505 보안대 소속 군인으로부터 검열받아야 했다.

광주시민과 시위대를 ‘폭도’로 내몰고 대신 민주적 시위에 대한 과잉진입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쓰지 못하도록 막았다.

광주전남언론인회는 “2시간여에 그친 12·3 비상계엄 선포 때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 통제를 받는다’는 문구가 포함돼 40여 년 전 악몽이 새삼 떠올랐다”고 전제한 뒤 “과거 군사독재 시절 똬리를 튼 보도검열의 불행한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당시 계엄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이뤄진 보도검열 역사를 전시하는 공간이 한 곳도 없어 5·18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옛 전남도청이 적합한 장소라고 덧붙였다.

옛 전남일보 기자인 김성 언론인회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에 성공해 계엄이 유지되고 있다면 모든 언론은 사실을 제때 보도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며 “보도검열관실 원형 복원과 함께 당시 신군부의 보도검열을 조사하는 정부 조사위원회 구성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후배격인 광주전남기자협회는 언론 통제 망령을 되살린 12·3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보도검열관실 복원의 명분이 뚜렷해졌다며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담은 성명서를 내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대부분 시민단체도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 보도검열관실 복원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재현을 넘어 비뚤어진 언론통제의 뼈아픈 잘못을 되새기는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복원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하지만 복원사업을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옛 전남도청복원추진단은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난색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당시 보도검열관실의 위치 등이 정확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추진단은 ‘광주의 고립’을 불러온 언론검열은 역사적 사실로 규명됐으나 사진·고증 자료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옛 전남도청등 다른 전시공간에 보도검열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포함하고 ‘보도검열관 명패’를 놓아 둔다는 복안이다.

1980년 당시 기자로 활동한 이들이 다수 소속된 언론인회에서 증언한 보도검열관실 위치는 옛 전남도청 별관 2층이다. 현재 해당 공간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건립 과정에서 철거된 상태다.

466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복원 중인 옛 전남도청은 오는 10월 말 완공이 목표다. 도청 본관과 별관·회의실, 전남도경찰국 본관·민원실, 상무관 등 6개 동 복원과 더불어 내부 전시콘텐츠 제작·설치 공사가 진행 중이다.

현재 공정률은 42% 수준으로 3개월간 시범 운영을 거쳐 2026년 1월 개관 예정이다.

추진단 관계자는 “퇴직 언론인들의 구술에만 의존해 옛 전남도청 공간을 복원하면 철저히 1980년 당시 모습으로 재현한다는 원칙을 깰 수 있다”며 “보도검열에 관한 전시 내용을 추가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