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19일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출석하지 않고 법원 체포영장과 조사에 잇따라 불응한 태도 등이 자충수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속영장 발부는 법원이 윤 대통령 내란 혐의가 소명된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윤 대통령 지시를 받은 군·경 지휘부의 진술이 사실상 결정타로 작용했다. 윤 대통령이 반복해온 수사권과 관할권 위반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8일 진행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공수처와 윤 대통령 측은 내란 혐의 성립 여부를 놓고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였다. 공수처는 서울서부지법에 제출한 150여쪽 구속영장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범행을 전혀 뉘우치지 않는다며 ‘전형적 확신범’으로 지칭했다. 또 재범 우려,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도 구속사유로 제시했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러 차례 대국민 담화와 자필 편지 등을 통해 비상계엄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어 향후 제2의 비상계엄 등 극단적 조치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은 심사에서 재범 우려에 대해 “말이 되지 않는 얘기”라고 강력 반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측은 당시 국회의 해제 의결 요구에 바로 계엄을 해제하고 군을 철수시켰다고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심사에 직접 출석해 심사 중간 40분, 심사 종료 직전 5분간 직접 발언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라는 점 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대통령께서 사실관계나 증거관계 법리 문제에 대해 성실하게 설명하고 답변을 했다”고 말했다.
또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의 직접 수사 대상 범죄에 내란죄가 없고, 내란·외환죄 외에 불소추특권이 있는 현직 대통령을 직권남용 관련범죄로 수사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관할권 없는 서울서부지법에서 발부받은 체포영장은 불법 무효라는 입장도 재차 밝혔다.
법원은 오후 2시부터 6시50분까지 4시간50분가량 영장심사를 진행했고, 심사 종료 후 약 8시간 고심한 끝에 공수처의 손을 들어줬다. 법조계에선 결국 법원 체포 영장에 불응하고, 조사 과정에서 침묵으로 일관한 윤 대통령의 태도가 영장 발부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체포 후 공수처 조사에서 일방적 발언을 쏟아냈고, 질문에는 한 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지난 16일과 17일 공수처의 조사에도 불응했다. 지난 3일 공수처의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대통령경호처는 ‘인간띠’를 만들어 영장 집행에 불응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수사에 불응하는 건 일반적으로 증거인멸 염려가 높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 지시가 없었다는 점, 국회 의결로 즉시 계엄을 해제하는 등 폭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등도 강조했지만 법원은 내란 혐의가 소명된다고 보고 영장을 발부했다. 공수처가 검찰로부터 확보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의 수사기록이 결정타가 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검찰로부터 수사 자료 1500쪽 이상을 확보하고 윤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서에 반영했다. 앞서 구속기소된 군관계자 등의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이 “국회 들어가려는 국회의원들 다 체포해. 잡아들여”,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수사 결과가 담겼다.
윤 대통령은 반복적으로 공수처의 위법 수사권 문제와 서부지법 관할권 위반을 주장해왔는데 이번 구속영장 발부로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앞서 두 차례 체포영장 발부 및 체포영장 발부에 대한 이의신청, 체포 이후 체포적부심, 이번 구속영장심사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위법 수사 문제를 제기했지만 모두 법원에서 기각됐다.
공수처는 윤 대통령 기소권이 없어 체포 기간을 포함해 총 10일간 수사한 후 검찰로 사건을 넘기게 된다. 검찰도 최대 10일 동안 윤 대통령을 수사한 후 서울중앙지법에 기소할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기소되면 1심에서 최대 6개월간 구속상태로 재판을 받게 된다. 만약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되면 수감 상태가 이어지게 된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