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살 1만명 줄인 열쇠, 한국에도! 한국자살유족협회 출발선

입력 2025-01-18 16:18 수정 2025-01-18 16:20
한국자살유족협회(회장 강명수) 창립식 참석자들이 18일 서울 강남구 제이드409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 내 자살유족이 주체가 되어 법 개정과 사회적 인식 개선에 나서는 한국자살유족협회가 18일 창립했다. 과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살률 1위를 차지했던 일본이 유족 중심의 사회적 활동을 바탕으로 자살 사망자 수를 감소시켰던 것처럼 협회 활동이 대한민국 자살율 감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날 서울 강남구 제이드409에서 진행된 창립총회에는 자살유족 30여명과 함께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 전홍진(전 중앙심리부검센터장) 삼성서울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 조성돈 라이프호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대표 이종국 국립공주병원장 양두석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자살예방센터장 등 국내 자살예방 및 자살유족 지원 활동을 펼쳐 온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황 이사장(사진)은 “유족들이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가 되어 협회를 창립하는 오늘이 우리나라 자살 예방 운동 역사의 중요한 기점이 될 것”이라며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의 회복을 돕고 희망을 움트게 하는 마중물이 돼달라”고 전했다.

전 교수는 “자살률을 낮춘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유족들이 용기 내어 자기를 드러내고 서로를 연결하며 지향점을 찾는다”며 “협회가 유족들 간의 연결성을 확장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연간 자살 사망자 수 3만 2000~3만 4000명대를 기록하며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일본은 2010년부터 감소세를 유지하며 사망자 수를 2만 1000여명대로 낮췄다. 이 과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기구가 유족의 목소리를 사회 전반에 알렸던 비영리단체 ‘라이프 링크’(대표 시미즈 야스유키)다.

2004년 설립된 라이프 링크는 ‘누구도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를 표방하며 자살을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전국의 자살유족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며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국회의원 모임, 시민단체 등과 함께 일본 정부에 자살 대책 마련을 제안했고, 2006년 ‘자살 대책 기본법’ 제정을 이끌어 냈다. 법 제정 후 3년여 만에 일본의 자살률은 지속적으로 줄어 30% 이상 감소하는 열매를 맺었다.

국내에선 지난해 6월 자살유족 지원 운동본부가 발족했다. 이를 구심점으로 자살유족 지원 법률 개정, 자살유족 지원센터 설립을 목표로 서명 운동을 진행해왔다. 이날 초대 회장으로 추대된 강명수(사진) 회장은 “매년 대한민국에서 1만 3000명 넘는 자살 사망자가 발생하고 가족을 비롯해 자살로 영향을 받는 주변인은 13만여명에 달하지만 이들을 위한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문제 해결은 요원한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전히 사회적 편견을 겪는 자살유족의 인식 개선과 돌봄 정책 연구, 지원 활동을 펼치는 게 한국자살유족협회의 주요 활동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조 모임을 넘어 자살유족이 주체적으로 협회를 설립한 국내 최초의 시도인 만큼 ‘당사자 운동’으로서의 영향력에 대한 기대도 높다. 양 센터장은(사진) “당사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 준 덕분에 ‘윤창호 법’ ‘민식이 법’ 등 우리사회 내 음주운전 사고와 스쿨존 교통사고에 경각심을 강화하는 법이 제정될 수 있었던 것”이라며 자살유족협회의 향후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전했다.

일본이 지역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토대로 자살유족들의 목소리를 지혜롭게 알렸던 것처럼 각 지역 유족 지원센터, 마음 돌봄이 활성화 된 교회와의 협력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된다. 조 대표(사진)는 “최근 2년 동안 전국 각지의 자살유족들이 ‘자살, 말할 수 있는 죽음’ 포럼에 참여해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응원할 수 있었던 배경엔 지역 교회의 협력이 있다”며 “이웃을 정서적으로 돌볼 준비가 돼있는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의 생명을 지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자살 예방 활동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협회는 다음 달 초 일본 ‘라이프 링크’와의 만남, 지역 유족센터 탐방 등을 일정을 소화하며 공식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와 함께 국내 자살률이 높지만 유족들의 정서적 회복이 더딘 도시들을 중심으로 포럼을 개최해 애도 과정을 돕고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연구해 나갈 계획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글·사진=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