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팥죽에 쫀득한 떡 한 덩이. 고소한 알밤 여러 개까지. 서울 삼청동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의 인기 메뉴인 팥죽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을 안 거치는 재료가 없다. 직접 팥을 쑤는 건 물론, 쌀을 불려 떡을 만들고 매일 알밤을 삶는다. 손님에게 항상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창업자 고(故) 김은숙(사망 당시 85세)씨의 신념 때문이다.
김씨는 지난해 11월 14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생전 가게 수익금의 일부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왔다. 형편이 어려울 때도 매달 몇만원씩 기부를 쉬지 않았고, 장사가 잘될수록 점차 기부액을 늘려갔다. 2009년부터는 서울 사랑의열매에 매달 100만원 이상씩 성금을 전달했다. 김씨가 그렇게 생전 기부한 액수는 10억원이 넘는다. 그는 2020년 서울시 봉사상 대상,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국민포장 등을 수상했다.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김씨는 6·25전쟁 때 어머니와 단둘이 피난을 내려와 힘겨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고작 아홉 살이었던 그는 부산에서 우연히 단팥죽을 먹고 그 맛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한다. 1976년 이 가게를 차리며 그 맛을 재현하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비슷한 맛을 찾아갔고, 자신의 노하우까지 더해 지금의 단팥죽이 완성됐다.
50여년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땐 가게 한구석에 김씨의 생활공간이 있었다. 가게는 김씨에게 집이자 생계 수단이었던 셈이다. 그때만 해도 삼청동이 한적하던 때라 종일 창밖을 보며 지나가는 차가 몇대인지 셀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 15일 가게에서 만난 아들 가광위(63)씨는 “‘오늘은 한 열대가 왔다 갔나 봐’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그랬기에 가게를 방문한 손님은 집에 찾아온 손님이나 다름없었다. 1~2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수다를 떠는 일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시간이 여유로우니 음식에는 더욱 정성을 다했다. 그 덕분에 입소문을 타고 점차 단골이 늘어갔다. 가씨는 “40년째 오는 손님, 멀리 일본에서 오는 부부, 강원도에서 철마다 옥수수를 보내주는 손님 등 다양한 단골이 있다”고 말했다.
가씨는 15년 전쯤부터 어머니와 함께 가게를 운영해왔다. 원래 사업을 하던 그였지만 아버지가 암 투병을 시작하며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위해 가게 운영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저녁 6시만 되면 가게에 나와 손님들과 인사를 나눴다. 한번은 영업이 끝난 뒤 찾아온 손님에게 어머니가 다시 가게 문을 열고 음식을 내어준 일이 있었다. 손님은 고마워하며 노래를 불러줬다고 한다. 어머니가 무척 즐거워하며 자신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다고 가씨는 회상했다. 그만큼 손님과의 관계가 돈독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기 오는 분들은 손님이 아니라 어머니의 팬이에요. 오실 때마다 다들 어머니 안부를 물어봐요. 그래서 제가 요즘은 조금 힘들죠. 어머니 부고를 전해야 하니까요. 다들 깜짝 놀라서 한동안 말씀을 못 하세요.”
가씨는 “어머니가 예전에 ‘우리 가게는 나름대로 명소야’라고 하신 적이 있다”며 “매출을 떠나 이런 곳을 반드시 이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기부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머니의 뜻을 따라 매달 일정 금액을 서울 사랑의열매에 기부하고 있다. 가씨는 “어머니께서 ‘실천’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라며 “어머니가 하는 걸 보고 배웠을 뿐”이라고 했다.
가씨는 특히 아픈 사람들을 돕고 싶다고 한다. 그는 “위로 누님이 한 분 계시는데 오랜 기간 조현병을 앓았다. 어머니가 열심히 기부하신 데에는 누님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며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하셨다. 나 역시 그렇다”고 말했다.
다만 어머니와는 다른, 자신의 속도대로 꾸준히 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께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엄마만큼 최선을 다하지는 못해. 그렇지만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할 거야’라고요. 무언가를 나누면서 기뻐하던 어머니의 마음을 요즘은 저도 조금씩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가게 이름이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인 이유가 궁금했다. 인터뷰 말미에 이 질문을 꺼내니 가씨는 웃으며 답했다. “지금처럼 손님이 질문하게 되잖아요. ‘왜 둘째예요? 첫째가 아니고?’라고요. 어머니에게는 손님과 소통하는 방법이었대요. 그리고 워낙 등수에 연연하지 않는 분이었어요. ‘둘째고, 셋째고 숫자가 뭐가 중요하냐고’ 늘 말씀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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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