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키드’ 신학자가 말하는 성경 읽기 비법은

입력 2025-01-16 18:26 수정 2025-01-16 19:00
‘달고 오묘한 성경 읽기’ 저자 제임스 F 코클리 미국 무디신학교 교수는 “성경은 문학적 걸작”이라며 “음모와 미스터리, 희망과 기쁨 등이 수록된 성경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고 말한다. 사진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성경을 읽는 한 여성의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의 명장면 중 하나는 주인공 막시무스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원수 앞에서 정체를 밝히는 모습이다. 투구를 벗으며 건넨 그 한 마디는 영화 속 그의 역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 이름은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 북부군 총사령관이었고 펠릭스 군단의 군단장이었으며 진정한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충성스러운 종이였다. 살해당한 아들의 아버지요 살해당한 아내의 남편이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살아서 못 한다면 죽어서라도.”

분노와 슬픔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이 대사엔 여러 수식어로 인물의 존재와 상황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문학적 장치인 ‘라벨 붙이기’가 쓰였다. 고전 명화를 보기 위해 주말마다 텔레비전 앞을 지킨 ‘비디오 키드’이자 미국 무디신학교에서 20여년간 성경을 강의한 저자는 이런 장치가 성경 곳곳에서 발견된다고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계시의 기록일 뿐 아니라 문학적 걸작”으로 “성경에도 위대한 작가가 작품에서 활용한 도구들이 똑같이 쓰였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그럼에도 기독교인 대부분이 본문 속 유명 인물과 사건에만 집중할 뿐 저자 의도와 필력, 글의 구조와 장치 등에 거의 주목하지 않는 현실에 개탄한다. 의무적으로 읽느라 문학적 즐거움을 놓치는 경우도 꽤 된다고 봤다. 그는 “적잖은 비기독교인이 성경을 높이 평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며 “음모와 미스터리, 좌절과 상처, 희망과 기쁨, 부활 이야기가 수록된 성경은 결코 지루한 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달고 오묘한 성경 읽기’ 저자는 명작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학적 수사 도구가 성경에도 다수 확인된다고 말한다. 사진은 성경과 각종 필기구가 놓인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책엔 기독교인에게 익숙한 성경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비법 14가지가 담겼다. 대부분은 동서고금의 명작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학적 수사 도구다. 첫 문장과 끝머리에 작품의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북엔드’(bookend·세워놓은 책이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물건) 기법이 대표적이다. 성서학 용어로는 ‘인클루지오’(inclusio)로 부른다. 국내에서는 ‘수미상관’(首尾相關)으로 익숙하다.

신약성경의 마가복음이 이 기법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다. 마가복음 저자로 알려진 마가는 첫 문장과 책의 후반부인 15장 39절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을 배치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리는 일종의 ‘구두 선언’이다. 여호수아 사사기 등 구약성경도 이 구조를 사용해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놀라운 건 저자가 다른 성경의 첫 책과 마지막 책에도 이 기법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창세기가 첫머리에서 천지창조와 에덴동산(창 1~3장)을 묘사한다면 계시록 끝머리는 새 하늘과 새 땅(계 21~22장)을 기록한다. 이때 각각 본문에서 사용한 단어와 글 구조가 매우 유사하다. “천지창조 당시 인간이 거했던 공간이 에덴동산이듯 인류의 역사가 완결되는 곳도 에덴동산”임을 뜻한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는 “이 기법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보면 주제와 관련해 저자가 남긴 실마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저자의 의도를 부각하는 또 다른 문학적 장치로는 ‘반복’이 있다. 한 이야기 안에 특정 단어나 어구가 되풀이된다면 필시 강조하는 특정 주제가 있는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문학에서도 즐겨 사용된 기법이기도 하다. 창세기 저자인 모세는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 이야기를 전하며 ‘아우’란 표현을 7회 사용한다.(창 4:1~17)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9절)란 가인의 항변에 간접적 답을 제시하기 위해 사용한 장치다. 표현의 반복으로 주제를 표출하는 해당 기법은 영국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첫 문장과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전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 등 근·현대 명문장에도 자주 쓰였다.


영화나 문학 작품을 분석하듯 성경을 해설한 책이다. 저명한 작품 못지않게 긴장감과 박진감, 전율과 해학이 넘치는 성경의 또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진리 추구나 본문 연구, 영성 생활의 수단이 아닌 ‘순전히 재미로 읽는 성경’이란 발상의 전환이 이채롭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