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 국방장관 지명자 “北 핵 보유국 지위…한반도·세계 안정 위협”

입력 2025-01-15 07:51 수정 2025-01-15 11:41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지명자. 연합뉴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새 행정부의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 지명자가 14일(현지시간) 북한을 ‘핵보유국(a nuclear power)’이라고 명명했다. 그동안 미국 정부는 북한의 여러 차례 핵 실험에도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해당 표현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헤그세스 지명자의 이날 발언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을 ‘사실상(de facto)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비핵화 대신 핵 동결 협상 등으로 기조를 잡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을 전망이다.

헤그세스는 이날 워싱턴DC 연방의회에서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사전 제출한 답변서에서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의 지위, 핵탄두를 운반하는 미사일 사거리 증대에 대한 강도 높은 집중, 증대되는 사이버 역량은 모두 한반도와 인도·태평양 지역, 세계의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헤그세스는 이어 “이런 위협은 북한이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미국의 동맹국들과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특히 우려된다”고 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동맹국은 한국과 일본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총 6차례 핵 실험을 하면서 스스로를 핵보유국이라 주장해왔다. 북한 헌법 4장에도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등을 위반한 북한에 대해 ‘핵보유국’으로 부르는 것을 자제해왔다. 그러면서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목표로 제시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2기 국방 정책을 이끌 헤그세스는 청문회에서 북한을 향해 ‘핵보유국’이라고 지칭했다. 북한이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과 같은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여겨질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지명자. 연합뉴스

헤그세스는 이어 “최근 들어 중국과 러시아, 북한은 그들의 핵 역량을 크게 확대하고 현대화했다”며 “북한은 핵무기 보유고를 확장하고 있으며, 핵탄두 소형화와 지상 이동발사 시스템에서 발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의 ‘우주 역량’에 대해서도 “계속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헤그세스는 또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4개국이 우크라이나 등에서 최근 보이는 행동을 언급하며 “전 세계에 걸친 미국과 동맹의 영향력을 해치는 협력적 접근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한미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에 나설 경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미 본토에 대한 위협만 제거하는 일종의 ‘스몰딜’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지난해 민주당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나온 정강·정책에는 모두 ‘북한 비핵화’가 문구가 빠졌다. 지난 10월 미 워싱턴에서 열린 제56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직후 발표된 공동성명에서도 ‘비핵화’ 표현이 빠지는 등 미국이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지난해 9월에는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북한을 ‘사실상의 핵 보유국’이라고 부르면서 파장이 일었다.

헤그세스의 발언이 알려진 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외신브리핑에서 “그 사안에 대한 우리의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커비 보좌관은 “차기 안보팀이 그것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우리는 이를 인정(recognition)하는 데까지 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지만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미국 정부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다만 물러나는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헤그세스는 동맹과의 관계에서도 ‘비용 부담’을 강조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노선도 그대로 따랐다. 그는 “동맹과 파트너의 국방비 지출 증대와 부담 공유는 우리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도록 보장하는 데 중요하다”고 밝혔다.

헤그세스는 “전략적 환경을 고려하면 우리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높은 준비 태세를 유지해야 한다”며 “장관에 임명되면 어떤 병력을 전진 배치할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병력 재배치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미군이 재조정되면 2만8000여명 수준인 주한미군 조정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