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김주혜’ 세계적 작품 속 값진 기회 얻은 제주… 세계인에 다가설 방안은 ‘과제’

입력 2025-01-13 16:46 수정 2025-01-14 10:26
제주도 성산일출봉 뒤로 한라산이 보인다. 지난해 한국 문학이 세계적 권위의 상을 잇따라 수상한 가운데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사진 위)와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에 제주가 작품 주제와 배경으로 다뤄졌다. 제주도 제공

세계 문단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문학 작품에 제주가 주요 소재나 의미있는 배경으로 잇따라 등장했다. 제주의 역사성과 아름다운 화산섬으로서 지닌 상징성을 세계에 알릴 값진 계기가 만들어지면서 방안 마련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에서 벌어진 광기와 살아남은 사람들

한강은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노벨위원회와 가진 인터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책으로 ‘작별하지 않는다’(사진)를 말했다.

노벨위원회가 공개한 인터뷰 전문을 보면 ‘이제 막 당신의 작품을 알게 된 사람에게 어떤 작품을 제안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모든 작가가 가장 최근에 쓴 책을 마음에 들어한다고 생각한다”며 이 책을 권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4·3사건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주인공 경하가 입원한 친구 인선의 제주도 집으로 내려가면서 75년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과 그에 얽힌 인선의 가족사를 마주하게 된다.

인선과 경하는 인선 어머니인 강정심이 생전 자신의 친오빠이자 4·3행방불명 수형인인 강정훈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사실을 알게 된다. ‘이곳에 있지 않은 사람’을 간절히 생각하는 정심의 마음은 이후 인선에게로 경하에게로 스며들며, 고통과 상실을 통과하는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준다.

한강은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기를 빈다’고 했다. 인선과 경하가 깊은 밤 깜빡이는 빛에 대한 믿음을 멈추지 않은 것은 ‘사랑’이고, 이러한 형태의 사랑은 역사적 아픔을 화해로 이끌어 온 제주 사람들의 인내나 간절함과도 맞닿아 있다.

한강은 글을 쓰면서 정부와 제주도 내 기관이 발간한 자료를 다수 참고했다고 밝혔다. 진상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쓰인 이 소설은 희생된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멈추지 않는다. 작가는 제주에서 갓난아이의 머리에도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된 배경과, 후세대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며 묵직하고 울림있게 제주4·3을 독자들의 가슴에 각인시킨다.

앞서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한강은 모든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의 삶의 연약함을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2023년 11월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메디치 외국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작은 땅의 야수들’… 평양에서 제주까지

지난해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이어 11월 한국계 미국 작가 김주혜의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사진)이 톨스토이문학상 외국문학상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 제주도는 주인공 옥희가 길고 지난한 삶을 보낸 뒤 정착하는 평안의 장소로 그려진다.

이야기는 1917년 조선, 극한의 추위 속에서 굶주림과 싸우며 짐승을 쫓던 사냥꾼이 호랑이에게 공격받고 있던 일본군 대위를 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만남으로부터 일제 식민지 시절 한반도라는 작은 땅에서 투쟁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반세기에 걸친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옥희는 어린 시절 함께 성장했던 정호가 해방 후 몸에 지니고 있던 은제 라이터 때문에 빨갱이로 의심받고 사형 집행을 당하자 더는 서울에 머물지 못하고 부산으로 간다. 하지만 부산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제주로 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은 주로 평양과 경성이다. 소설에서 제주도는 에필로그에 ‘해녀’라는 제목으로 14쪽 분량으로 서술된다.

하지만 제주에 도착한 옥희가 남편을 피해 도망한 해녀의 갓난아이를 키우고 물질을 배우며 평화를 얻게 되면서 제주라는 공간은 소설 안에서 매우 비중 있는 장소로 독자들에게 기억된다.

작가는 제주도를 ‘에메랄드빛 초록과 사파이어의 파랑 색채를 띤 바다’ ‘만년설이 덮인 한라산’ ‘초여름이면 분홍빛 진달래가 언덕과 절벽을 온통 뒤덮는’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했다.

특히 옥희는 평양에서 제주까지 웅크린 호랑이 모양의 한반도를 종단하는데, 일제 치하 민초들의 이야기를 용맹한 호랑이에 빗대 표현한 작가의 의도를 고려할 때 제주도가 갖는 의미는 아름다운 섬 이상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여기에 미주 한인 1.5세 작가이면서 작가의 외할아버지가 김구 선생을 도왔던 독립운동가였던 점도 작품에 대한 주목도를 끌어올린다.

책은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이달의 책’에 올랐다. 미국 40여개 신문·잡지·방송에서 추천 도서로 소개되면서 현재까지 14개국에서 출판됐다. TV시리즈 제작도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작가의 톨스토이문학상 수상 역시 한국 출신으로 처음이다.

제주로 쏠리는 새로운 시선
제주도는 지난달 24일 4·3희생자유족회, 도내 작가단체 관계자 등과 함께 4·3유적지 평화기행 ‘4·3유적지에서 되살리는 문학과 기억의 대화’를 진행했다. 제주도 제공

이처럼 세계 문단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문학 작품에서 제주가 비중있게 다뤄지면서 제주를 세계에 알릴 값진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4·3은 전국화가 핵심 과제로 남은 상황에서 전국을 넘어 세계화의 호기를 맞고 있다.

제주에선 4·3, 문학 단체를 중심으로 ‘작별하지 않는다’ 속 장면과 유사한 4·3유적지를 직접 가보거나, 한강 작품과 4·3문학을 연계한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도 소설에 등장한 유적지나 길을 연결해 4·3투어리즘을 확대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제주도교육청과 제주관광협회는 한강 수상을 계기로 전국 학생들에게 4·3을 알리기로 하고, 올해 경기도 지역부터 수학여행단을 유치해나가기로 했다.

국내 출판사 문학동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작별하지 않는다’를 포함한 한강 작품은 총 47개 언어로 해외에 출간됐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등 14개국에 번역 출간됐다.

문학계에 따르면 문학 수출입 미팅 현장에서 한국 출판사 부스를 찾는 서구권 출판사 관계자들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10월 독일에서 열린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선 한강 작품을 펴낸 독일출판사 아우프바우가 한강 특별전을 열어 일주일만에 한강 작품 15만부를 새로 인쇄한 것으로 전해졌다.

‘작은 땅의 야수들’을 펴낸 다산북스도 같은 도서전에 참여해 한국 문학에 대한 열기를 확인했다. 다산북스 저작권팀 관계자는 13일 통화에서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은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도서전으로, 매년 참여해 왔다”며 “최근 세계 출판업계가 한국 문학을 주목하면서 작품에 대한 문의가 크게 늘고, 수출 비율도 높아져 현장에서는 일이 많아진 상황”이라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도내 문학계 관계자는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은 작가 개인의 쾌거이자 한국의 영광이면서, 제주로서는 4·3과 제주를 알릴 매우 값진 기회를 얻게 된 것”이라며 “어떤 방식으로 세계에 제주를 알릴지 고민하고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