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작은 섬 노록도 교회는 공식적으로 노회 임원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출범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할머니 집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점입니다. 15년 전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까지 재래식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마저 큰길가에 있어서 동네 사람들의 항의가 많았답니다. 그래서 묻어버렸는데 정작 나중에 할머니께서 혼자 되시고 화장실마저 없이 오랜 세월을 사셨다는 얘기를 듣고 서럽기만 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할머니 집 앞을 다니시며 냄새 때문에 불편을 겪었고 그로 인해 다툼도 많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정화조를 묻을 수 없는 위치에 집이 있어서 할머니 자녀들도 다방면으로 노력해 전문업자들에게도 문의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포기하시고 ‘내가 이제 늙었는데 그냥 불편하게 살다가 천국 가겠다’ 하는 마음으로 세월이 흘렀다고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 집이 예배 처소가 되고 이제 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예배팀이 동행하는데 만약 이전 같은 악취가 계속 발생한다면 혹시라도 주민들에게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치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시기에 로마에서 연기만 나도 기독교인이 화재를 일으켰다고 소문이 났던 것처럼 노록도에 교회가 생기면서 교인들이 악취를 풍긴다는 소문이 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섬에서 전도를 하려면 먼저 주민들이 생각하는 교회와 목회자의 진솔한 모습, 너그러움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섬사람들의 마음 문을 여는 기회가 됩니다. 이를 통해 그들이 평생 만나본 적 없는 기독교의 이미지를 바르게 정립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노록도는 1.5m의 도로가 경사를 이루며 약 1㎞의 거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포클레인 진입이 어려웠고 특히 할머님댁은 경사가 심한 언덕에 있습니다. 또한 할머니 댁은 마당이 좁고 여유 공간이 부족해 만약 억지로 정화조 통을 묻으려면 마당 가운데를 파서 설치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반이 바윗덩어리로 되어 있어서 1.5m 깊이의 땅을 삽으로만 파는 것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어떤 일꾼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고약한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을 만드는 일이 교회당 건축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난공불락 같은 환경에서 저는 기도하면서 달려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먼저 불리한 여건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정화조 통과 변기 세트, 각종 자재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여름의 끝자락에 비지땀을 흘리면서 온종일 인부 한 사람을 사서 물건을 손수레에 실어 옮겼습니다. 이 모습을 동네 사람들이 지켜봤습니다. 그러자 어떤 분은 말리고 어떤 분은 왜 불가능한 일을 시작하느냐며 야단을 쳤습니다.
그러나 저는 반드시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마을 분들에게 전했고, 할머니 댁에서 악취가 멈춰야 동네 주민에게도 유익하다고 설득을 시키면서 기도했습니다. 한 발자국, 한 삽을 뜰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주여, 마을에 복음이 전파되려면 예배당이 아니라 화장실이 먼저입니다” 하고 생떼를 썼습니다.
혹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그까짓 화장실 하나가 뭐 그리 대단한 문제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인 곳에는 50만원만 주면 포클레인을 부르고 한 시간이면 정화조를 묻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섬엔 도로도 없고 경사도 심해 헬리콥터로 장비를 운반해야 할 정도입니다. 그랬기에 할머니의 자녀들도 10년이 넘도록 해결하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셨고 마을 주민들은 절대로 멈출 것 같지 않은 어떤 목사의 똥고집을 보면서 함께 손을 내밀어 주셨고 드디어 화장실이 완성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