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어느 지방자치단체 공직자의 민낯

입력 2025-01-12 18:40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1948년 헌법에 지방자치를 명시하고, 1949년 최초의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당시 법은 지방의회의원만 선거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었고, 게다가 최초의 지방선거는 6·25전쟁 와중이던 1952년에 실시되었다. 이후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나고 개헌을 통해 제2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지방선거 대상이 지방자치단체장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지방자치에 관한 임시조치법’을 만들어서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지방자치의 부활을 남북통일 이후로 유보한다고 결정하면서 지방자치는 먼 나라 일이 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인해 개헌이 이루어지면서 비로소 임시조치법이 폐지되었다. 그리고 개정 헌법에 따라 1987년 지방자치법이 부활하여 1991년부터 지방선거가 다시 치러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어렵게 부활한 지방자치가 35년째를 맞았다.

새해 벽두부터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구속 소식이 들린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내리 3선을 한 김진하 양양군수가 불명예의 주인공이다. 김 군수는 여성 민원인으로부터 민원 해결을 대가로 돈을 받고,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를 방문해 그녀 앞에서 바지를 내리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가 하의를 모두 내리는 장면이 찍힌 영상이 만천하에 공개되어 공분을 사기도 했다. 그는 지난 2일 강제추행죄와 뇌물죄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는데,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편, 김 군수와 함께 여성 민원인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박봉균 양양군의원도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법원은 여성 민원인에 대해서만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의 혐의는 이렇다. 여성 민원인이 박 군의원에게 김 군수의 성범죄 영상을 제보했는데, 영상을 받은 박 군의원이 김 군수를 만나 ‘여성 민원인의 민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취지로 협박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지방자치의 수준을 돌아보게 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우리 지방자치는 김 군수, 박 군의원과 같은 사람들로 인해 끊임없이 위협을 받았다. 술에 취해 아내를 골프채와 주먹으로 때려 숨지게 한 기초의회 의장이 있었는가 하면, 동료 기초의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문제로 지역 사회를 시끄럽게 한 기초의원도 있었고, 최근에는 기념 촬영 중 동료 여성 기초의원의 가슴을 팔꿈치로 누른 혐의로 기소된 기초의원도 있다. 이런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회의원이 일으킨 사건이 하루가 멀다하고 기사화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리는 견고하다. 간혹 사퇴하는 공직자가 있기는 하나, 대부분은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 이들을 공직에서 퇴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2007년 7월부터 시행된 ‘주민소환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그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 광역자치단체장은 해당 지자체 유권자 총수의 10%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하고, 기초자치단체장은 15% 이상, 광역의원, 기초의원은 20%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 다음 유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하고, 유효투표 총수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해임이 확정된다. 해임하지 말라는 소리와 다름없어 보인다. 실제로 주민소환이 성공한 예도 극히 드물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헌법 개정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참에 지방자치제도도 현실에 맞게 손을 보는 건 어떨까. 그나저나 김진하 양양군수 해임을 위해 주민소환투표 발의에 서명한 양양군민 수가 유권자 총수의 15%를 훌쩍 넘겼다고 한다. 김 군수의 해임이 멀지 않았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