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한국 대중가요의 상징적인 존재로 한 시대를 풍미한 가황(歌皇) 나훈아가 가수 생활에 작별을 고했다. 마지막 무대에서도 정치권을 향해 작심 비판을 하는 등 거침없는 모습을 보였다.
나훈아가 12일 서울 송파구 서울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마지막 콘서트 ‘고마웠습니다’를 열고 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쉽고 간단한 말에 담긴 깊은 진리의 뜻을 따르고자 한다”던 약속을 지키며 58년 가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미성이 숨어 있는 중저음과 콧소리, 꺾기 창법이 전매특허인 나훈아는 지난해 4월 인천을 시작으로 이어 온 마지막 전국 투어에서도 여전한 가창력과 쇼맨십을 뽐내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1967년 데뷔한 나훈아는 ‘내 사랑’ ‘무시로’ ‘갈무리’ ‘잡초’ ‘고향역’ ‘가지마오’ 등 120곡이 넘는 히트곡을 남겼다. 200장이 넘는 앨범과 3000여 곡의 노래를 발표한 그는 라이벌인 남진과 함께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다. 남진은 도회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면 나훈아는 서정적인 분위기와 야성적인 매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6년 데뷔 40주년 공연을 마친 그는 2007년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취소하면서 건강 이상설 등 각종 루머에 시달렸다. 2017년 11년 만에 컴백한 뒤에는 매년 신보를 발매하거나 콘서트를 열었다. 2020년 추석 연휴 KBS 2TV에서 방송한 공연 ‘2020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테스형!’을 불러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돌연 은퇴를 선언하면서 나훈아는 “처음 겪어보는 마지막 무대가 어떤 기분일지 짐작하기 어려워도 늘 그랬듯이 ‘신명나게 더 잘해야지’ 하는 마음이 가슴에 가득하다. 활짝 웃는 얼굴로 이별의 노래를 부르려고 한다”며 “여러분, 고마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전했다.
방송, 무대, 기자회견장 등에서 거침없는 발언을 하기로 유명한 나훈아는 마지막 공연에서도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야성’을 드러냈다.
나훈아는 서울 공연 첫날인 지난 10일 무대에서 “왼쪽이 오른쪽더러 못한다고 하더라”고 말한 뒤 자신의 왼팔을 가리키며 “니는 잘했나”라고 말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소추 등으로 혼란스러운 정치권을 작심하고 비판한 것이다.
그는 “우리 어머니는 형제가 어떤 이유가 있어도 싸우면 안 된다고 했다”며 “하는 꼬락서니가 정말 국가를 위해서 하는 짓거리인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훈아는 “지금 머리 위에 폭탄이 떨어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TV에서 군인들이 전부 잡혀들어가고 있고, 어떤 군인은 찔찔 울고 앉았다”며 “여기에 우리 생명을 맡긴다니 웃기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저런 건 (언론이) 생중계하면 안 된다. 북쪽의 김정은이 (이런 것을) 얼마나 좋아하겠느냐”고 쓴소리를 이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