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019년 낙태죄를 헌법불합치로 결정한 후 교계 프로라이프(낙태 반대) 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이전에는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단체가 낙태죄 폐지 반대 운동과 생명윤리 강화를 중심으로 프로라이프 운동을 전개했다면, 2020년 교계에서 생명연합체인 행동하는프로라이프(행프)가 결성된 뒤 태아 생명보호 법안 제정에 힘을 모으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 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교육과 캠페인도 활발해졌다. 그러나 포괄적 차별금지법 이슈처럼 한국교회 저변에 확대되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하는 현시점에서 미혼모 지원, 입양 활동 등 근본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1대 국회서 6건 법안 문턱 못 넘어
2020년 9월 행프는 당시 문재인 정부가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낙태 전면적 허용에 따른 위기감 속에 체계적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결성됐다. 이 같은 교계 움직임 속에서 21대 국회에서는 임신 14주 및 24주 내 낙태 허용, 낙태 전면 허용 등을 골자로 한 6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현재 22대 국회에서는 조정훈 조배숙 김대식(국민의힘) 의원들이 태아 생명 법안 발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캠페인 예배 세미나 등 다양한 생명 운동 전개
그동안 교계에서는 아름다운피켓을 비롯해 러브라이프 전국네트워크, 위드유 캠페인, ㈔프로라이프 등 태아생명 운동을 하는 리더십 연대 활동이나 단체별 팻말 캠페인, 세미나 등의 활동이 이어졌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회연합 등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낙태죄 폐지 반대 집회와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교계의 생명 운동에 동참하는 교회들은 2021년부터 매년 고난 주간과 부활절을 ‘생명을 위한 고난 특별예배 및 생명 주일예배’로 드리고 있다. 특별예배를 주관한 교회로는 온누리교회, 중앙성결교회, 인천주안장로교회, 대구동신교회가 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프로라이프 운동에도 지각 변동이 감지되는 추세다. 프로라이프 진영에서는 낙태 반대의 원칙론과 실용론이 등장했다. 원칙론은 낙태를 전면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는 반면, 실용론은 현실적인 입법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하고 있다. 홍순철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은 “두 입장은 공통으로 수정 후 낙태 반대를 주장하지만 세부 전략에서 차이를 보인다”며 “협상가와 이론가가 협력해 입법을 이뤄야 할 것”을 조언했다.
사회적 인식 변화를 촉구한 생명 윤리 교육 ↑
프로라이프 운동이 교계를 넘어 일반인에게도 점차 알려지기 시작한 고무적인 면도 있다. 장지영 이대서울병원 교수는 “(낙태죄 폐지 이후)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낙태 문제가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관련 운동 등이 생겼다”고 평가했다.
현재 프로라이프 진영은 기존의 낙태 반대 입법 활동뿐 아니라 생명윤리 교육과 사회적 인식 변화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홍 소장은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의 ‘써플’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이는) 생명교육과 성교육, 태아 생명 보호 운동을 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라이프는 전국 13개 지부에서 태아 생명 교육을 포함한 성교육을 진행하며 다음세대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베이비박스와 포항여성소망센터 등 위기 임산부를 지원하는 센터들과 낙태반대와 태아 생명존중의 메시지를 전하는 여러 선교단체의 피케팅 활동도 생명 운동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입법 공백으로 낙태 문제 방치
헌법재판소의 판결 후 6년 가까이 대체 입법이 부재한 상황에서 성을 가볍게 여기고 생명에 대한 책임감이 무뎌지는 부작용이 심각하다.
홍 소장은 “헌법재판소 판결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그렇다고 낙태가 법적으로 전면 허용된 상황은 아니다”라며 “입법 공백 상태가 지속되면서 사회적으로 낙태 문제가 방치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주사랑공동체 대표인 이종락 목사는 “헌재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젊은 세대가 성의 소중함을 모르고 올바른 성 가치관이 무너지고 있다”며 “프로라이프 단체는 반대 측으로부터 끊임없는 공격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혼모 지원, 입양 등 근본 대안 제시해야
일각에서는 프로라이프 운동이 반동성애 운동만큼 한국교회의 저변에 확대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목회자나 성도들 가운데 낙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태 반대만 외치기보다 교회가 미혼모 지원, 생명 인식 개선, 입양 활동 등 근본적 대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목사는 “교회 내 입양 운동이 활발해지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아이들을 위해 교회·교인이 아이들의 보호자가 되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소장은 “교회가 생명 보호에 대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교회 미래와 생명 보호의 기회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생명 운동과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이 연합할 때 더 논리적으로 체계적인 운동이 가능해질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교회가 공동육아, 미혼모 지원, 입양 등의 생명 보호를 위한 사회적 활동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총회장 김종혁 목사) 생명존중위원회는 109회기에 자살 및 낙태 등 방지를 위한 목회 매뉴얼을 만든다. 최근 총회회관에서 1차 임원회를 열고 조직을 구성했다. 출산 장려와 낙태 예방 등 활동을 전담할 생명존중위원회 상설화에도 힘쓸 예정이다.
김아영 유경진 김수연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