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겜2’ 이병헌 “韓 언어·동료 작품으로 전 세계 사랑받아 감개무량”

입력 2025-01-10 17:50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인간, 그리고 인간 사회의 밑바닥을 본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그 모습을 보고 모든 희망을 잃어 그 사회의 충실한 일원이 됐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그런 사회를 바꾸겠다며 구조에 도전한다. 이 두 사람이 겨룬다면, 누가 이기게 될까.

지난해 연말 공개 후 전 세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시즌2(오징어 게임2)는 프론트맨(이병헌)과 성기훈(이정재)의 대치와 심리 게임을 다루며 위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시즌2는 구조에 도전한 성기훈이 프론트맨에게 처참하게 당하며 끝났다.

배우 이병헌. 넷플릭스 제공

시청자들은 시즌2를 보며 성기훈의 도전보다도 참가자들에게 정체를 숨긴 채 게임에 참가한 프론트맨의 이야기에 더 몰입하며 흥미진진해 했다. 게임 참가자들을 최대한 많이 살려 나가겠다던 성기훈이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하자 프론트맨이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희미한 미소를 띤 장면은 국내외에서 호평이 이어졌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할리우드 작품을 몇 번 출연했지만 딱히 연기 칭찬을 받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액션 위주여서인지, 영어 연기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며 “해외에서도 캐릭터 소화를 잘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참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이병헌은 과거 게임에 출연해 우승했으나, 우승 이후 게임을 총괄하는 프론트맨이 된 황인호를 연기했다. 주인공인 성기훈과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기훈이 가진 희망과 신념이 틀렸음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시즌2에서 게임에 직접 참가한다. 프론트맨은 ‘오징어 게임’ 시즌1에서 내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다가 마지막에서야 가면을 벗는 특별출연 배역이었다. 하지만 후속 시즌이 제작되면서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커졌다.

이병헌은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찍을 때 황동혁 감독이 제주도에 놀러 왔었다. 그때만 해도 시즌2 이야기는 정해진 게 없어서 모든 ‘오징어 게임’ 관계자는 인호의 과거 이야기가 나올 거라 상상했다. 심지어 감독님도 그랬다”며 “한참 뒤 초고가 나왔대서 봤는데 6개월 만에 썼다는 13권의 에피소드가 정말 짜임새 있게, 재밌게 쓰여있더라. 너무 놀랐다. 황 감독은 연출도 잘하지만, 이야기를 쓰는 데 천재적인 재능이 있구나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오징어 게임' 시즌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2’가 기훈과 프론트맨의 대결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병헌은 이야기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그의 정체를 아는 시청자들이 이야기의 끝까지 어떤 반전이 있을지 궁금증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병헌은 “(그런 임무가) 큰 숙제였다. 평소의 황인호, 프론트맨이 된 황인호, 그리고 참가자들 앞에서 연기하는 오영일, 이 세 캐릭터가 연기에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 장면이 변주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매 작품에 임할 때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고 했다. 그는 “글을 쓴 사람의 의도를 내가 온전히 다 가져오고 싶어서, 그 캐릭터의 행동을 샅샅이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며 “시즌1에 이어 이번에도 질문을 정말 많이 했다. 그러니까 황 감독이 ‘하도 질문을 많이 해서 황인호의 서사가 완성된 것 같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렇게 프론트맨의 옷을 입은 그지만, 3라운드 게임인 ‘둥글게 둥글게’에서 다른 참가자를 죽이는 장면을 연기하는 건 힘들었다. 2명이 짝을 지은 뒤 방을 선점해야 하는 상황에서 홀로 방에 있던 다른 참가자를 정배(이서환) 앞에서 죽이는 장면이다. 이병헌은 “그 장면에선 인호와 오영일, 프론트맨의 모습이 0.1초 단위로 오가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기대도 되는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배우 이병헌. 넷플릭스 제공

이병헌은 ‘K콘텐츠’란 이름으로 한국의 이야기들이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기 전에 여러 할리우드 작품에 출연했다. 영화 ‘지.아이.조’ 시리즈(2009·2013), ‘레드: 더 레전드’(2013), ‘터미네이터 제니시스’(2015), ‘미스 컨덕트’(2016) 등이다. 이병헌은 “여기 출연하면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날 알아보겠다. 이거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근데 아무도 날 못 알아보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 수많은 과정 속에 (환대를 경험한 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 ‘오징어 게임’ 프로모션으로 미국 LA에 갔을 때 팬들의 반응을 보고 정말 놀랐다”며 “처음 ‘지.아이.조’에 출연했을 때 이렇게 될 줄 알았는데 영어 연기도, 미국 작품도 아닌, 한국 동료들과 한국말로 촬영한 작품으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성원과 사랑을 받게 된 게 아이러니하면서도 감개무량했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