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 회장이 9일 그룹 사장단 회의를 주재하고 강도 높은 쇄신을 주문했다. 지난해 말 유동성 위기설이 불거지며 어수선했던 롯데는 올해도 국내외 경제 상황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와 글로벌 사업 발굴에 나설 방침이다.
신 회장은 이날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2025 상반기 롯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 회의)’에서 “지난해는 그룹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한 해였다”며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외부환경이 아닌 우리 핵심사업의 경쟁력 저하”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쇄신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VCM은 어느 때보다 엄중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녹록지 않은 경제 상황을 감안한 듯 올해 상반기 VCM은 지난해보다 열흘가량 앞당겨 열렸다. VCM에는 롯데지주 대표, 사업군 총괄대표와 계열사 대표 등 최고경영자(CEO) 80여명이 참석했다. 롯데그룹은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VCM을 연다.
지난해 8월 지주와 일부 계열사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한 롯데는 11월 들어 지라시에서 시작된 유동성 위기설로 계열사 주가가 일시 급락하는 등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위기설을 촉발한 롯데케미칼의 2조원대 회사채 조기상환 리스크를 해소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 롯데렌탈 지분 매각과 롯데헬스케어 사업 청산 등 중장기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을 정리하고 주력 사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바이오·AI 등 신사업에 투자하고 있다.
신 회장은 “빠른 시간 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유형자산 매각, 자산 재평가 등 다양한 방안을 시행하고 있다”면서도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CEO들에게 과거 그룹 성장을 이끈 사업일지라도 새로운 시각에서 재정비하라고 촉구했다. 경영 방침으로는 도전적인 목표 수립, 사업구조 혁신, 글로벌 전략 수립 등을 제시했다. 신 회장은 “국내 경제, 인구 전망을 고려했을 때 향후 그룹의 성장을 위해 해외시장 개척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며 “지금이 변화의 마지막 기회다. 위기를 대혁신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임원인사를 통해 부사장으로 승진한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은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 방문한 후 VCM 참석을 위해 귀국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