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 크래프톤과 위메이드가 미국 글로벌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와 손잡았다. 챗봇 기능이 전부였던 게임 속 캐릭터와 몬스터를 상황에 맞게 소통하고 살아 숨 쉬는 듯한 실제 인물처럼 만든다는 계획이다. 두 게임사는 AI를 활용해 지금껏 없었던 새 경험을 게이머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이를 통해 게임 산업의 미래를 선도하겠단 포부다.
NPC와 실시간 대화…크래프톤 ‘CPC’가 뭐길래
크래프톤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정보기술(IT)·전자 전시회 ‘CES 2025’ 발표회에서 엔비디아와 공동 개발한 AI 기술 ‘CPC(Co-Playable Character)’를 8일 공개했다. 엔비디아의 AI 가상 캐릭터 개발 기술 ‘에이스(ACE)’로 구현된 CPC는 게임에 특화된 온디바이스 소형 언어 모델(sLM)을 바탕으로 게임 이용자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다.
CPC는 단순한 멘트와 움직임만 반복했던 기존 NPC(비 플레이어 캐릭터·Non-Player Character)와 달리 사전 스크립트(대본) 없이 플레이어와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에이스의 AI 기술 스택(NeMO, Riva) 등이 구현돼 있어 플레이어의 질문에 즉각적으로 대답하고 더 나아가 행동이나 질문을 역으로 제안할 수도 있다. 플레이어는 가변적인 게임 상황에 반응하는 NPC와 대화하며 더욱 콘텐츠에 몰입하게 된다.
크래프톤은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인조이’와 배틀로얄 게임 ‘배틀그라운드’ 지식재산권(IP) 프랜차이즈에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전날 엔비디아가 공개한 영상에서는 배틀그라운드 속 게이머가 AI 팀원 ‘펍지 앨라이(PUBG Ally)’와 함께 소통하면서 적을 찾고 자동차를 운전하며 아이템을 찾는 모습이 구현돼 관심을 모았다. 오는 3월 출시를 앞둔 인조이 영상에서는 AI 캐릭터 ‘스마트 조이(Smart Zoi)’가 스케줄을 짜주는 등 다채롭게 게이머와 상호작용하는 모습이 연출됐다.
게임사는 다른 차기작에도 CPC를 활용한다. 이강욱 크래프톤 딥러닝본부장은 8일 CES 현장에서 “크래프톤은 펍지 IP 프랜차이즈와 인조이를 포함한 다양한 게임에 CPC를 확대 적용해 이용자 경험 혁신을 이어가겠다”며 “CPC가 게임 업계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수 있도록 최적화와 표준화 작업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플레이어 행동·패턴 학습하는 몬스터?
위메이드의 자회사 위메이드넥스트는 엔비디아와 신작 ‘미르5’에 등장하는 보스 몬스터를 AI로 개발한다. 미르5는 위메이드의 핵심 IP인 ‘미르의 전설2’을 활용한 PC 오픈월드 다중접속온라인역할수행게임(MMORPG)이다.
위메이드넥스트는 지난해 6월부터 엔비디아와 AI 캐릭터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중 첫 번째 결과물로 미르5 속 AI 보스 몬스터 ‘아스테리온’을 선보일 계획이다.
아스테리온은 머신러닝과 SLM이 적용된 AI 모델을 파인튜닝해 개발되고 있다. 이 몬스터는 이용자 행동 패턴을 학습하고 공격패턴에 변화를 준다. 게이머는 흔히 알려진 파훼법만 믿었다가는 보스의 변칙 공격에 당하기 십상이다. 보스의 스킬을 파악한 뒤 다채로운 전투 전략을 세워야 아스테리온을 공략할 수 있다.
엔비디아, 게임사와 ‘AI 동반자’ 될까
게임 산업계는 최근 몇 년 사이 게임 제작에 생성형 AI를 활발히 사용했다. AI로 만든 개발 품질이 점점 고도화되는 데다가 제작 기간까지 획기적으로 줄여주다 보니 업계에서의 채택 비중은 날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술과 AI 솔루션의 선도 기업이다. 자체 AI 조직을 꾸리고 역량을 키우는 게임사와 자연히 접점이 느는 추세다. 엔비디아는 인기 게임사와의 협업을 통해 자사의 기술력을 검증 및 홍보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7월 넥슨은 자사의 루트슈터 게임 ‘퍼스트 디센던트’에 엔비디아의 핵심 신기술 ‘업스케일링 기술(DLSS)’ ‘광선 재구성 기술’을 적용해 업계 안팎의 이목을 끌었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가 지금은 글로벌 시장에서 AI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있지만, 이전에는 게임 그래픽 카드 제조사로 널리 알려졌다”며 “이미 게임사들과 협업한 경험이 다수 있고 관련 노하우도 상당하다. 게임 제작 과정에서 AI 기술을 도입하려는 국내 게임사들 입장에서 엔비디아는 친근한 최적의 파트너인 셈”이라고 전했다.
김지윤 기자 merr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