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식민주의” “정글의 법칙” 트럼프 팽창주의에 국내외 반발

입력 2025-01-09 07:59 수정 2025-01-09 09:0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트루스소셜에 올린 뉴욕포스트 사진. 트루스소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영토 팽창주의가 국내외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기자회견에서 병합을 거론한 덴마크령 그린란드와 파나마뿐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신(新)식민주의’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취임 이후 트럼프가 영토 확장 엄포를 단순히 협상 수단이 아닌 실제 정책으로 추진할 경우 국제 정치에도 파장이 확산할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8일(현지시간)에도 자신의 주장을 ‘먼로 독트린’에 빗대 ‘돈로(도널드와 먼로 합성어) 독트린’으로 표현한 뉴욕포스트 1면 사진을 트루스소셜에 게시했다. 해당 이미지는 트럼프가 캐나다를 ‘51번째주’, 그린란드를 ‘우리 땅’ 등으로 표시한 지도를 가리키는 모습을 합성했다. 먼로 독트린은 미국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발표한 외교 정책 원칙으로 유럽의 간섭을 금지하고, 미국 패권주의를 행사하는 기반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럼프 자신도 먼로 대통령처럼 미국의 패권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도 비판이 나왔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린란드에 대한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일(미국 편입)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며 “우리는 그것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에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 “우리는 동맹을 소외시킬 수 있는 말을 하는 대신 동맹과 긴밀히 협력할 때 더 강하고 효과적이고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11월 대선이 그린란드를 침공하거나 무력으로 점령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반문했다.

블링컨 장관과 함께 기자회견에 나선 장 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미국이 그린란드를 침공하진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우리가 정글의 법칙의 시대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고 말했다. 바로 장관은 동맹 중시를 강조한 블링컨 장관을 향해 “당신은 우리가 사랑하는 미국의 얼굴을 구현했다”고 말했다. 미국 언론은 이를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를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했다. 올라프 쇼츠 독일 총리도 “국경 불가침 원칙은 아주 작은 국가든 아주 강력한 국가든 모든 국가에 적용된다”며 트럼프의 전날 발언을 비판했다.

그린란드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 연합뉴스

다만 덴마크는 직접 맞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트럼프가 1기 재임 시절 그린란드 편입을 주장할 당시 메테 프리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즉각 “터무니없다”고 반박했지만, 이번엔 반격 수위를 조절하고 신중한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CNN은 전했다. 트럼프가 그린란드 매입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나선 만큼, 그를 자극하지 않고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미국 일각에서는 그린란드가 덴마크로부터 독립에 나설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의 발언이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가치에 관한 토론과 중국 러시아에 대한 견제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파나마에서도 곧바로 반발이 나왔다. 리카우르테 바스케스 모랄레스 파나마운하 청장도 이날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중국이 운하를 운영한다는 (트럼프의) 비난은 전혀 근거가 없다”며 “중국은 운하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중국인, 미국인 또는 그 누구도 차별할 수 없다”며 “이는 중립국 조약과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파나마운하를 중국이 운영하고 있다며 30억 달러의 보수 비용도 중국이 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파나마운하 청장은 운하 보수 비용을 자체 조달하고 있다며 트럼프가 주장한 30억 달러가 무슨 근거인지 알 수 없다고 반박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아메리카 멕시카나'라고 쓰인 고지도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가 멕시코만을 미국만으로 바꾸겠다고 하자 멕시코도 발끈하고 나섰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대형 스크린에 17세기 지도 이미지를 띄운 뒤 “북미 지역을 멕시코 아메리카로 바꾸는 것 어떨까”라며 “참 듣기 좋은 이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도에는 미국 국토 대부분에 ‘AMERICA MEXICANA’라고 표기돼 있는데, 멕시코 대통령은 1607년 북미 대륙 명칭을 살필 수 있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이어 “멕시코만이라는 이름은 유엔에서 인정하는 이름”이라며 “17세기에도 멕시코만이라는 이름이 존재했고, 국제적으로도 통용되고 있으며,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확인되는 명칭”이라고 강조했다.

CNN은 “트럼프의 21세기 신식민주의는 거대한 위험이며 국제법과 정면으로 충돌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며 “트럼프는 여러 세대에 걸쳐 구축된 동맹을 파기하고 우방을 소외시켜 미국의 힘을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