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에서 경제 지표마다 나타난 호황에도 파산 신청 건수가 2010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현지시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 미국에서 파산 신청이 최소 686건으로 2023년 대비 8%가량 증가했다”며 “지난해 파산 신청 건수는 2010년 828건으로 집계된 뒤 14년 만에 최다”라고 보도했다.
2010년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월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시작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침체기가 이어졌던 시기다. 이른바 ‘리먼 쇼크’로 불리는 당시의 위기에 버금갈 정도의 기업 파산이 지난해 속출했던 셈이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파산을 막기 위해 법정 외 채무조정 조치에 나선 기업도 크게 늘어 파산 신청 건수보다 2배가량 많았다. 이로 인해 1억 달러 이상의 부채를 진 기업의 채권 회수율은 2016년 이후 가장 낮았다고 FT는 설명했다.
FT는 “고금리와 소비 둔화가 기업 경영에 타격을 입혔다”고 진단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2022년 3월부터 5%대까지 올린 기준금리를 지난해 9월부터 내리기 시작했지만, 올해에는 인하 속도를 조절할 것이라는 전망이 금융가에서 힘을 받고 있다.
연준의 기준금리가 현행 4.25~4.50%보다 낮았던 2021~2022년의 합계 파산 건수는 777건으로, 연간 평균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었다. 하지만 금리 인상기에 들어간 2023년 파산 건수는 636건으로 급증했고, 지난해에는 50건이 추가됐다.
소비자들의 수요 둔화도 기업 파산이 속출한 원인으로 꼽힌다. FT는 파티용품 기업 파티시티, 주방용품 제조사 타파웨어, 해산물 식당 프랜차이즈 레드랍스터, 저가항공사 스피릿항공, 화장품 소매 기업 에이본프로덕츠의 지난해 파산을 소비 둔화에 휩쓸린 사례로 지목했다.
영국 런던 회계법인 EY의 그레고리 다코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물가 상승이 지속돼 소비 수요를 억누르고 있다”며 “저소득층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크지만, 중산층과 고소득층에서도 신중한 소비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