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 제주항공 참사가 광주·전남지역 공항정책 전반의 ‘블랙홀’로 떠올랐다. 광주 군·민간공항 동시 이전과 관광객 유치를 위한 전남 신안 흑산공항 개항에 제동이 걸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8일 광주지역 관가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제주항공 참사 이후 광주 군공항 동반을 전제로 무안공항과 통합을 추진해온 광주공항 이전을 재검토하자는 시민 여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무안공항 여객기 이·착륙 비행경로와 인근에서 자주 출몰하는 새떼 이동 지점이 겹치거나 교차해 향후 조류 충돌(버드 스트라이크) 사고에 따른 제2의 제주항공 참사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대다수 광주시민은 광주시가 최대 현안으로 추진 중인 군·공항 이전 추진에 “많은 유족의 슬픔이 가라앉지 않은 시기라서 거론하기는 무척 조심스럽지만, 여객기 운항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공항 이전을 누가 찬성하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군공항과 묶인 광주 민간공항의 무안공항 통합은 그동안 극심한 전투기 소음을 떠안을 수 없다는 무안군민들의 강력한 반대로 수년째 헛돌고 있다. 1조 원이 넘는 지역개발 혜택과 숙원사업 지원금 제안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이다.
시민단체 등도 “군·민간 공항 이전은 그동안 ‘동북아 허브공항’을 명분으로 문을 연 무안공항 활성화를 명분으로 삼았으나 이번 참사로 동력 대부분을 잃은 셈”이라며 “공항 통합 실효성보다 탑승객 안전문제를 우선해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당사자인 광주시장과 무안군수, 전남지사가 지난해 7월 우여곡절 끝에 ‘3자 회동’을 갖고 돌파구를 찾았으나 팽팽한 의견대립만 하다가 빈손으로 돌아섰다.
민선 7기 출범 직후인 2018년 8월 무안공항 활성화 협약 이후 6년 만에 광주·무안·전남의 ‘수장’이 어렵사리 마주 앉아 기대감을 키웠지만 결국 아무 합의를 이루지 못한 셈이다.
이 같은 시점에서 179명의 인명이 희생된 무안공항 참사가 발생해 광주공항 이전은 앞으로 한층 더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내 최대 철새 이동 지역으로 꼽히는 흑산공항 건립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벌써 제기되고 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등은 참사 이후 성명을 내고 “국토부는 흑산공항 건설을 백지화하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전국 14개 공항 중 무안공항 이·착륙 과정의 조류 충돌사고 집계 건수가 1만 건 당 9건, 발생률 0.09%로 가장 높은 데 흑산공항은 이보다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남 도내 섬 관광 활성화 명분으로 내세운 흑산공항 건설이 무안공항 참사로 첫 단추를 꿰기 이전에 좌초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전남도와 신안군은 68개의 부속 섬 등에 20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연간 40만 명이 관광객이 방문하는 흑산도는 파도가 높거나 기상여건이 악화할 때마다 유일한 교통수단인 여객선 운항이 자주 중단돼 응급환자 후송을 위해서라도 공항개설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지역 정가에서는 제주항공 참사를 계기로 광주공항 이전과 흑산공항 개항이 물 건너갔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광주시의회 의장 출신의 모 인사는 “경제적 타당성이나 지역 균형발전 명분을 떠나 앞으로 총선과 지방선거 등에서 광주공항의 무안공항 이전 반대 공약은 불 보듯 뻔하다”며 “제주항공 참사로 항공안전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지역 항공정책의 대대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