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과학과 기술이 생활의 중심이 된지 오래지만 길몽을 믿고 행운을 기대하는 전통적인 믿음은 여전히 주목받고 있다. 길몽은 시대와 상관없이 희망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65만여점에 이르는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조선시대에 길몽을 사고팔면서 작성했던 ‘꿈 매매문서’ 2점을 발굴했다고 8일 밝혔다.
◇청룡과 황룡이 등장하는 꿈 매매=1814년 2월말, 대구에 살고 있던 박기상(朴基相)은 청룡과 황룡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꿨다. 박기상은 사흘 뒤인 3월 3일에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한양으로 떠나는 친척 아우 박용혁(朴龍赫)을 떠올렸고 그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팔았다.
당시 작성되었던 매매문서에 따르면 두 사람은 1000냥에 꿈을 팔기로 합의하고 대금은 과거 급제 후 관직에 오르면 지급한다고 적혀 있다. 또 문서에는 길몽을 꾼 ‘몽주(夢主) 박기상’과 그 꿈을 샀던 ‘매몽주(買夢主) 박용혁’의 날인이 있으며 친척 두 명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1840년 2월 2일, 경북 봉화에 살고 있던 진주강씨 집안의 여자 하인 신씨는 청룡과 황룡 두 마리가 서로 엉켜있는 꿈을 꾸고는 집주인의 친척 동생인 강만(姜鏋)에게 청색·홍색·백색 등 삼색실을 대가로 받으면서 꿈을 팔았다. 이때 작성된 매매문서에는‘몽주(夢主) 반비(班婢) 신(辛)’과 증인으로 참석한 그녀의 남편 박충금(朴忠金)의 날인이 있다.
◇길몽을 사고 파는 오래된 전통=고려사의 ‘진의매몽’과 삼국유사의 ‘문희매몽’은 꿈을 사고파는 ‘매몽(買夢) 설화’의 대표적 자료다.
고려사 ‘진의매몽’은 보육(寶育)의 둘째 딸 진의가 성년이 되었을 때 언니가 오관산 정수리에 올라 소변을 보니 천하에 가득 흘러내렸다는 꿈 이야기를 들려주자 “제가 비단 치마로 그 꿈을 사겠습니다”하고는 정화왕후가 됐다는 이야기다.
삼국유사 ‘문희매몽’은 김유신의 누이 보희가 서악(西岳)에 올라 소변을 보니 장안에 가득 찼다는 꿈을 꿨고, 동생 문희가 비단 치마 한 벌을 주고 길몽을 사서 김춘추(태종무열왕)의 왕비가 됐다는 줄거리다.
꿈을 둘러싼 해몽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오래된 전통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태아의 성별과 운명을 예측하는 태몽, 횡재를 불러온다는 돼지꿈과 대소변에 관련된 꿈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용꿈은 사회적 지위 상승을 암시하는 길몽으로 유명하다.
한국국학진흥원 정종섭 원장은 “길몽을 사고파는 일은 오늘날에도 행해질 정도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습속”이라며 “꿈의 매매는 일반적으로 구두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번에 발견된 꿈 매매문서는 매우 희귀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동=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