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T는 학교에 갈 수가 없다. 속이 메슥거리고 토할 것 같다. 그리고 멍해지면서 집중할 수가 없다. 학교에 머무르는 것이 너무 힘들다. 위장 계통의 모든 신체적인 검사를 했다. 모두 정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증상은 가라앉지 않았다.
T의 부모는 이혼했다. 현재는 T와 아빠, 새엄마가 함께 살고 있다. 어려서부터 부모는 심각하게 다툼이 많았다. 싸움은 격해지고 폭력이 오가기도 했다. T는 그런 상황이 익숙한 것처럼 자기 방에서 혼자 놀았다. 아빠한테서 스트레스를 받은 엄마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T에게 화풀이했다. 신체적 학대를 하기도 하였다. T는 몹시 힘들었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았다. 유치원도 학교생활도 다니고 누구에게도 힘든 표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표정하게 변해 갔고 멍하며 무엇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물론 성적도 최하위권이었다. 누구에게도 감정 표현하지 않는 T는 가까운 친구를 사귈 수도 없었다. 차츰 외톨이가 되어갔다.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메스꺼움이 심해져 학교에 나갈 수가 없었다.
T와 같이 트라우마를 반복적으로 겪어온 사람들은 과잉 각성이 되어 불안감을 느낀다. 가슴이 갑자기 빨리 뛰거나 숨이 가빠오고 메스꺼움을 느낀다. 과소 각성이 되어 멍해지고 무감각해진다. 감정반응이 사라지는 등 극단적인 반응 사이를 오간다. 어찌 보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극단적인 스트레스 상황이 아닐 때에도 이런 반응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부적응적인 반응인 거다. 트라우마 시기 동안의 신체 반응을 몸이 기억하여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먼저 T로 하여금 이런 몸의 반응이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과정임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양극화된 반응 사이의 적정 반응을 조절할 수 있다는 조절감, 통제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현재의 오감에 집중하면서 현재의 감각에 닻을 내리는 거다. 발을 바닥에 밀어 무게감을 느끼고 엉덩이가 의자에 닿는 느낌에 집중한다. 뭔가를 먹을 때는 맛과 향, 촉감에 집중한다. 과잉 각성의 증상이 올 때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다. 반면 과소 각성의 증상이 오면 신체의 활동을 늘리고 손가락을 맞대어 누르거나 걷기를 하면서 적정 각성을 만드는 등 브레이크 기능을 배워 본다.
이상 각성 증상들이 다소 완화되면 그동안 겪어 왔던 삶의 시련들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물론 그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현재에 이렇게 생존해 온 긍정적인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그때 도움이 되었던 사람을 기억해 보는 것도 좋다.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아온 사람도 그 여정에서 먼 친척이나 선생님, 이웃 등 버티도록 도와준 사람은 한둘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기억해 내는 것이 도움 된다. 물론 가장 애쓴 것은 자신이라는 점과 함께. 그리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방치되었던 자신의 감정을 떠올려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걸 피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감정을 회피하고 방치했을 때의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된다. T 역시도 그것을 치르고 있는 과정이다. 현재의 T가 ‘어린 시절 어느 시점의 부모 폭력이 난무하는 집을 떠올리며 그 가운데 홀로 남겨진 어린 T의 감정에 함께 머물러 본다. 그 감정을 공감해주고 쓰다듬어 준다. 트라우마에 노출하면서 과거의 어린 T와 현재 T를 분리해 거리 두고 바라보고 안아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괴로운 감정도 회피만 할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도록 도울 수 있다.
이호분(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