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섞은 음식을 먹여 살해한 혐의로 1·2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30대 여성이 파기환송심 끝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주심 김상환 대법관)은 지난해 12월 24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21년 5월 26∼27일 남편에게 세 차례에 걸쳐 치사량 이상의 니코틴 원액이 든 미숫가루와 흰죽, 찬물을 먹도록 해 남편이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남편은 26일 밤 A씨가 건넨 미숫가루·흰죽을 먹고 속쓰림과 흉통 등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다녀왔다. A씨는 27일 새벽 귀가한 남편에게 찬물과 흰죽을 건넸고, 이후 남편은 같은 날 오전 3시에 사망했다.
1심 법원은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으로 밝혀졌는데, 피해자가 흰죽을 먹은 뒤 보인 오심, 가슴 통증 등은 전형적인 니코틴 중독 증상이라고 볼 수 있다”며 “피고인은 액상 니코틴을 구매하면서 원액을 추가해달라고 했고, 이를 과다 복용할 경우 생명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등 피해자 사망 전후 사정을 볼 때 3자에 의한 살해 가능성은 작다”고 판시했다.
2심은 검찰의 공소사실 중 찬물을 이용한 범죄만을 유죄로 인정했지만, 형량은 그대로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23년 7월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수원고법에 돌려보냈다.
당시 대법원은 A씨가 남편에게 건네준 찬물에 치사량이 넘는 니코틴이 들어있다는 사실이 합리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며 “추가 심리가 가능하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수원고법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4차례 변론 절차를 거친 끝에 “범행 준비와 실행 과정, 그러한 수법을 선택한 것이 합리적인지, 발각 위험성과 피해자의 음용 가능성, 피해자의 자살 등 다른 행위가 개입될 여지 등에 비추어봤을 때 합리적 의문의 여지가 있다. 범죄증명이 안 된다고 판단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A씨가 범행을 위해 니코틴 원액을 구입했다고 볼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음용하면 찌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지는 니코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의식이 뚜렷한 피해자에게 이를 먹여 살해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남편이 A씨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후 자살을 시도한 바 있고, 이 외에도 경제적 상황과 가족 문제 등으로 불안정한 정서 상태가 심화했을 가능성도 있어 피해자의 다른 행위가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A씨와 피해자의 재산 내역을 봤을 때 피해자의 사망으로 얻을 재산이 압도적으로 많지 않고, 남편이 생활비 등을 지원했던 점을 고려하면 범행동기 또한 확실하지 않다고 봤다.
검찰은 파기환송심 판결에 불복해 재상고했지만,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춰 살펴보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살인죄의 성립, 환송판결의 기속력(구속력)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상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