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린스’ 이채환, 선수 은퇴…LCK 해설자로 새 출발

입력 2025-01-07 11:02 수정 2025-01-07 11:32

2021~2022년 리브 샌드박스의 돌풍을 이끌었던 프로게이머 ‘프린스’ 이채환이 마우스 대신 마이크를 잡는다. 이제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의 해설자로 팬들을 찾을 예정이다. 지난 5일 서울 LCK 아레나에서 그를 만나 은퇴 결심의 배경과 해설자로서의 포부를 들어봤다.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해설자로 변신했다.
“최근 2년간 미국, 중국 등 해외 리그에서 활동했다. 연이어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까 국내에서 활동할 때보다 받는 스트레스가 컸다. 정신적으로도 연소가 많이 됐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프로 생활을 이어나가는 건 새 소속팀에 민폐일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LCK 측에서 중계진 합류를 제의해 숙고 끝에 현역 은퇴를 결정했다.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최선을 다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그때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미련 없이 은퇴를 결정했다.”

-최근 2년간 선수로서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이 은퇴 결심에 영향을 끼쳤나.
“2022년 겨울 북미 팀인 플라이퀘스트에서 나를 진심으로 원한다고 느껴서 이적했다. 스프링 시즌을 3등, 서머 시즌을 9등으로 마쳤다. 변명거리를 찾아보자면 연습 환경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나를 핵심 선수로 여기고 짠 로스터였던 만큼 부진에도 내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작년엔 중국의 월드 엘리트에 입단했다. 혼자만 한국인이다 보니 적응에 어려움이 많았다. 현역 선수들이 이 인터뷰를 본다면 ‘해외 진출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야 한다’고 조언하고 싶다. 그렇게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자 하는 열정이 많이 떨어진 가운데 LCK에서 해설자 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아버지한테 좋은 목소리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 객원 해설로 참여했을 때 시청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재미있는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2018년 BBQ 올리버스에서 프로게이머로 데뷔했다.
“2012년 여름, 아주부 프로스트와 CLG EU의 LCK 서머 시즌 결승전을 처음 보고 LoL의 매력에 빠졌다. 무작정 PC방에 찾아가서 LoL을 하고 있는 아저씨한테 ‘저도 이 게임 하는 법 좀 알려주세요’하고 졸라서 배웠다. 게임을 하다 보니 잘할 거란 확신이 생겨서 부모님께 프로게이머에 도전해보겠다고 밝혔다. 그때 솔로 랭크 티어가 골드였다.(웃음) 부모님께서도 꿈을 응원해주셨다. 그때부터 게임에만 집중했다.
2017년 3부 리그 격인 LoL 클럽 시리즈에 ‘쇼메이커’ 허수와 함께 나가서 우승했다. 이후 팀의 중심이었던 허수는 담원 게이밍에 입단했고 나는 솔로 랭크에 몰두했다. 솔로 랭크 등수가 높아지니까 5~6개 팀에서 입단 제의가 왔다. LCK 1부 리그 팀이었던 BBQ 올리버스에 입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담원으로 가지 않았던 게 조금 아쉽다. 그때는 2부 팀보다 1부 팀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BBQ에서는 출전 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다. 당시엔 워낙 플레이에 디테일이 떨어졌다.”
LCK 제공

-BBQ가 강등되고 결국 2019년 담원에 입단했다.
“그때 잘 나가는 신인 선수들을 보며 일종의 열등감을 느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신인이어도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한다고. 스크림도 하고, 경험도 쌓고 해야 어린 선수가 기량을 꽃피울 수 있다. 당시는 1군 멤버 외에는 스크림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기였다. 갑자기 1군 스크림에 들어가면 이유도 모르고 그냥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 중간에 몇 번 경기에 나오긴 했지만 그게 다였다. 내가 못하기도 했다. 잘했으면 팀이 썼을 거라 생각한다.
담원 시절 머리를 삭발하고 경기에 나갔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나는 머리 염색을 좋아한다. 그때도 염색을 했다. 김목경 감독님께서 ‘성공하고 염색한 프로게이머는 봤어도 아직 성공도 못 했는데 염색한 선수는 못 봤다’고 하시더라. 그 말씀을 두 번 하셨다. 그래서 머리를 밀었다. 나중에 경기 영상을 보는데 채팅창에서 나를 보고 강백호, 깡패, 건달이라고 하더라.”

-이듬해 2부 팀이던 스피어 게이밍으로 가서 오히려 기량이 늘었다. 관계자들의 평가도 그때부터 달라졌다.
“나는 내가 프로게이머로 무조건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첫해와 2년 차를 아쉽게 마무리하고 나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혔다. 그래서 2부 리그로 떠났다. 2부 리그부터 내 실력을 증명하고자 했다. 2020년엔 스스로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죽기 직전까지 LoL만 했다. 정신병 수준의 강박증세까지 생겼다. 하루만 LoL을 쉬어도 기량이 급감해서 불안했다.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전부 심리적 요인에서 기인한 문제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하루만 쉬어도 기량을 회복하는 데에만 4~5일이 걸렸다.”

-2021년 펀플러스 피닉스를 거쳐 리브 샌드박스로 갔다.
“월즈 우승을 한 팀으로부터 오퍼를 받다니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무조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중국에 가니까 일이 잘 안 풀렸다. 경기는커녕 스크림도 못 참여했다. 에이전시 도움을 받아 계약을 일찍 해지했다. 스프링 시즌 2라운드에 리브 샌드박스로 갔다. 마침내 LCK를 한 팀의 주전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사실에 들떴다. 막상 시즌 치러보니 쉽지 않았다. 팀원과의 의견 차이도 있었고 나 역시 모자란 점이 많았다. 스프링 시즌은 8위였으나 서머 시즌은 5위를 기록했다.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하지만 워낙 팀을 향한 기대치가 올라있는 상태였기에 월즈 진출 실패의 아쉬움이 짙었다.”

-이듬해 스프링 시즌엔 휴식을 취하면서 개인방송에 도전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쉬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개인방송을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개인방송이 잘 됐다. 그때도 하루에 12시간씩 LoL만 했다. 아프리카TV(現 SOOP)가 개최하는 대회에 나가거나 솔로 랭크를 쉬지 않고 플레이했다. 선수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여전히 컸다.
개인방송 중 아프리카TV 대회에 같은 팀으로 나갔던 ‘투신’ (박)종익이 형에게 피드백 시간에 화를 내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기억해주시더라. 지금도 길거리에서 저를 알아보시고는 ‘프린스’나 이채환이 아니라 ‘종익이 형’이라고 부르시는 분들도 계신다.”

-서머 시즌에 리브 샌드박스로 복귀했다.
“프로 복귀의 기회가 소중해서 망설임 없이 복귀를 결정했다. 2022년엔 팀이 내게 모든 걸 맞춰준 것도 활약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팀원들의 동선, 팀의 조합과 운영이 모두 나의 캐리에 맞춰져 있었다. 내가 다른 걸 생각할 필요가 없이 온전히 캐리 역할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세팅돼 있었다.”
LCK 제공

-그때 개인 기량이 최고조에 달했다. 비결이 있었나.
“그때 선수의 기량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내 장점과 다른 선수들의 장점을 알고, 상대한테 한 번 당한 수는 빠르게 내 것으로 체득했다. 상대한테 어떤 특정한 플레이를 당해서 졌다면 다음에 만났을 땐 내가 같은 기술을 역으로 써서 이길 정도였다. 당시에는 습득력이 지금의 5배는 됐다고 생각한다. 상위권, 하위권을 가리지 않고 맞상대의 장점을 모두 흡수했다. 팀원과 코치들한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뭔가를 깨달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상대의 스킬이 본능적으로 읽혔고 쿨타임이 알아서 계산됐다. 2022년 내 경기 영상을 다시 봐도 잔무빙에 실수가 거의 없더라. 외국에서는 이런 현상을 인더존(in the zone)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우리말로는 ‘초집중 상태’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상대를 앞무빙으로 쫓아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가정하면 ①상대 스킬을 의식하고 ②스킬을 피하고 ③앞무빙을 한다는 스텝이 필요하다. 2022년엔 이 과정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이뤄졌다. 지금은 나도 하고 싶어도 못 한다. 살면서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은, 그렇지만 꼭 한 번은 다시 해보고 싶은 경험이다.”

-신인 서포터 ‘카엘’ 김진홍과의 시너지 효과도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홍이는 정말 천재였던 거 같다. 나는 서포터와 LoL의 개념 싸움을 많이 하는 편이다. 여느 때처럼 스크림을 하고 진홍이에게 피드백을 했는데 다음 판에서도 진홍이의 플레이가 바뀌지 않았다. ‘너 아까 내 피드백을 이해했다고 했잖아. 왜 똑같이 한 거야?’하고 물어보니까 진홍이가 ‘아니, 이해한 건 맞는데 어떻게 바로 플레이에 적용해요?’하고 대꾸하더라. 그때 나는 진홍이가 천재라고 느꼈다. 생각해보니 앞선 2달 동안 진홍이한테 정말 많은 것들을 요구했었다. 그동안은 준비과정 없이도 플레이를 바꿔온 것이더라. 진홍이는 천재였던 거 같다.”
LCK 제공

-2022년은 월즈 진출의 문턱 앞에서 좌절했다.
“선발전에서 담원 기아와 DRX에 연이어 지면서 월드 챔피언십 진출이 좌절됐다. 대중이 말하는 소위 ‘유관(有冠) DNA’가 있는 선수들 상대로 심리전에서 밀렸다. 시즌 말미에 성적이 떨어져서 선수단이 느낀 부담감도 컸다고 생각한다. 그해 DRX 상대로 모든 경기를 다 이겼는데 가장 중요한 선발전에서 졌다. 담대함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후회는 없다. 그때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아니겠나. 선발전을 포함해 선수 생활의 말년이 실력에 비해 아쉬웠던 건 사실이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7년을 프로게이머로 보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는다면.
“원래 가장 고단했던 때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가. 2017년 LoL 클럽 시리즈 때 내가 정말 못했다. 팀원들은 다 마스터 티어인데 나만 다이아몬드1 티어였다. 그런데도 에고(ego)는 무척 세서 소위 ’박는’ 플레이를 했다. 그때 소환사명이 ‘그래 마음껏 비웃어’였는데 해설진이 나를 무척 좋아했던 게 기억난다. 결승전에선 안 박고 차분하게 잘했다.(웃음) 우승하고 팀원들과 함께 기뻐하고 껴안았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현역 시절 맞대결해본 선수 중 가장 까다로웠던 상대는.
“앞서 말했듯 내 재능은 상대의 장점을 카피하는 능력이었다. 이 능력으로는 모든 분야에서 10점 만점을 찍을 수가 없다. 특히 풍부한 경험이나 강한 에고는 베낄 수가 없다. 2022년에 ‘룰러’ 박재혁 선수를 상대하면서 경험과 에고 측면에서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프트’ 김혁규 선수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게 없는 것, 즉 경험은 카피할 수가 없는 영역이었기 때문에.
라인전보다는 이전까지 쌓아온 구도에 대한 축적된 경험, 전장 설정과 팀 규모 전투에 대한 이해도, 밴픽과 조합 이해도 등에서 ‘룰러’ 선수와 차이가 났다고 생각한다. ‘룰러’ 선수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임이니까.
플레이오프나 선발전처럼 중요한 다전제 무대에서 더 좋은 픽이 있을 수도 있다고 느낀다. 그런 부분에서 내가 감히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다전제 준비를 ‘느낌이 있다’고 추상적으로밖에 설명하지 못하는데 우승을 경험해본 선수들은 나보다 뛰어난 안목과 이해도가 있어서 직관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에게 졌을 것이다. 나는 다전제도 (일반적인 경기와) 똑같이 준비했다. 그리고 그래서 졌다고 생각한다.”
LCK 제공

-이제 해설자로 새롭게 출발한다. 어떤 해설자가 되고 싶은지.
“해설자도 스타일과 개성이 있다. 전문성은 기본으로 깔고 가겠지만 스타일과 개성은 아직 방향을 정하는 단계다. 중국과 북미에서 활동하면서 해외 리그 중계도 봤다.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하는데도 전달력은 좋은 해설자들이 있다. 그런 점은 본받고 싶다. 최근까지 현역 선수로 활동한 만큼 선수들의 생각을 잘 안다. 선수들의 움직임에 어떤 의도가 담겨있는지 파악해 전달하고 싶다. 장면에 대한 지엽적인 설명보다는 게임의 맥을 짚어주는 해설을 하고 싶다. 전투 상황에 대한 구도 분석과 선수들의 사전 설계 과정을 설명하고 싶다. 좋은 해설이 되기 위해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요즘엔 집에서 혼자 음 소거 상태로 경기를 보면서 중계 연습을 하고 있다.”

-2025년 LCK의 양상을 전망한다면.
“우선 경기 수가 늘어서 긍정적이다. 해설도 하면 할수록 느니까. 또한 2025시즌엔 아타칸이라는 오브젝트가 추가됐다. 양 팀이 무조건 싸우게 되는 수단이다. 당장의 패치 방향성만 봤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전투 구도 분석과 선수들의 설계를 설명할 기회가 많을 것 같다.
작년 3강이었던 T1, 젠지, 한화생명e스포츠 세 팀은 올해도 3강을 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선수들의 개인 커리어, 최근 성적 모두 뛰어나다. 프로팀의 로스터 구성은 연금술이다. 선수들이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조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3강 팀들은 금(金)만 넣고 항아리를 저었으니 당연히 금이 나올 확률이 높다. 중위권 싸움은 정말 치열할 것으로 본다. LoL 월드 챔피언십 출전 경험이 많거나 우승해본 선수들이 여러 팀으로 흩어졌다. 게임에 대한 연구, 장점 파악과 선수단 조율에 따라 전혀 다른 성적표를 받게 될 것 같다. 중하위권 팀들의 로스터에 대격변이 일어난 것도 오랜만이다. 고착화됐던 LCK 순위권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본다. 그동안 무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고수의 등장, 몰락 가문의 화려한 부활에 팬들이 환호하게 되지 않을까.
OK 저축은행 브리온을 다크호스로 뽑고 싶다. 지난 연말 KeSPA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2군 선수들이 섞여 나온 대회였지만 결국 우승을 했다는 건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다. 나와 좋은 기억을 공유하는 ‘클로저’ 이주현이 있어서 잘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버서커’ 김민철이 있는 DN 프릭스나 ‘덕담’ 서대길이 있는 KT 롤스터도 잘했으면 싶고…사실 모든 팀이 다 잘했으면 좋겠다. 다들 노력한 만큼 보상을 얻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