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도를 박해받는 애국자로…美의사당 폭동 4년, 뒤집어진 서사

입력 2025-01-06 16:34
지난 2021년 1월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진입하기 위해 의사당 벽을 기어 오르고 있다. AP연합뉴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진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의 난입·폭력 사태는 폭동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TV로 다 생중계됐고, 논쟁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약 1600명 중 절반 이상이 유죄 판정을 받았으며, 200명이 며칠에서 최대 2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트럼프의 정치적 경력은 ‘1·6 의사당 폭동’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4년 후 그는 의사당 폭동의 날에 폭동의 현장에서 대통령 당선 승인을 받는다. 오는 20일 그가 취임하면 의사당 폭동 관련자들에 대한 대대적 사면이 이뤄질 예정이다. 폭동을 사주한 혐의로 자신을 수사한 인사들을 고발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는 ‘사랑의 날: 트럼프는 1월 6일의 폭력적인 역사를 어떻게 뒤집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지난 4년 동안 의사당 폭동을 어떻게 세탁하고 음모론과 순교 이야기를 섞어 정치적 자산으로 만들어냈는지 보도했다.

의회 폭동 다음날, 공화당 하원의원인 매트 게츠는 일부 폭도들이 “트럼프 지지자로 가장하고 있으며, 실제론 폭력적인 테러 단체의 일원”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공화당 내 친트럼프 의원들은 2021년 봄과 여름 내내 폭동에 대한 의심과 음모론을 퍼뜨리려고 했다. 랄프 노먼 의원은 모든 폭도들이 트럼프 지지자인지 의문을 제기했고, 앤드류 클라이드 의원은 의사당 난입을 “정상적인 관광객 방문”이라고 말했다.

6월 중순 폭스 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은 폭동이 연방수사국이 조직한 위장 작전이었다는, 한층 놀라운 이론을 펼쳤다. 가을에 그는 의사당 공격이 정부 음모라는 주장을 확장한 3부작 다큐멘터리 ‘패트리어트 퍼지(Patriot Purge)’를 공개했다.

한동안 침묵했던 트럼프는 그해 3월 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1월 6일 사태는 “대체로 평화로웠다”고 말하며, 의사당을 습격한 군중들이 경찰에 의해 “인질”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7월 초 플로리다주 집회에서는 경찰관의 총에 맞아 사망한 폭동 가담자 애슐리 밥빗의 이름을 거론하며 순교자처럼 묘사했다.

2022년 6월 하원 청문회가 시작되자 트럼프는 연설과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의사당 사태는 “조작되고 도난당한 선거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그는 1·6 사태가 폭동이 아니라는 글을 쓴 보수 언론인과 수감자 가족을 지원하는 단체 창립자를 초청했다. 2023년 3월에는 의회 폭동으로 수감된 약 20명의 남성들이 애국가를 합창하고 여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모두를 위한 정의’라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NYT는 트럼프는 의회 폭동을 부정하기 위해 부정선거라는 주장을 퍼뜨리고, 정부가 사주했다는 음모론을 암시하고, 가담자들을 애국자라고 부르고, 기소를 박해라고 주장했다며 “그렇게 의사당을 공격한 사람들은 정치범, 인질, 순교자, 애국자가 되었다”고 전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