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선포로 내란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을 둘러싼 국내 정치 혼란을 두고 그 원인이 극우 유튜버들의 음모론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이를 주도하는 세력이 일부 기독교 층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이 정치적인 의견을 낼 수는 있으나, 그 신념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입장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면서 “겸손의 자세로 상호 간의 입장을 청취하는 동시에 토론의 장을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집회 고조시키는 기독인?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4일(현지시각) “한국의 뿌리 깊은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극우 유튜버들이 퍼뜨리는 음모론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알고리즘을 타고 윤 대통령의 복권을 요구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NYT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배후에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있듯이 윤 대통령에겐 ‘태극기 부대’가 있다”면서 “태극기 부대는 주로 고령의 기독교인들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은 애국가와 성조기, 좌파 정치인들이 중국과 북한에 나라를 넘길 것이라는 주장으로 집회를 고조시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쪽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렸는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를 중심으로 집결됐다. 전 목사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정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공수처가 다시 진입한다고 하는데 여러분이 확실히 막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 붉은색 경광봉을 흔들며 호응했다.
NYT는 “윤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주장과 극우 유튜버들의 음모론이 상당히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유튜브는 선호하는 정보를 더 많이 보여주는 알고리즘을 채택해 사용자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3 한국’에 따르면 국내 응답자의 53%는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와 견줬을 때 9% 포인트 증가한 수치인데, 특히 46개 조사대상국 평균(30%)보다 23% 포인트 높게 집계됐다.
‘좌우’를 넘어 토론의 장으로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강조한다.(수 1:7) 목회자와 성도 역시 정치적 의견을 낼 수 있으나, 개인의 의견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입장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종교사회학 교수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교회 안에서도 좌 편향과 우 편향은 있을 수밖에 없다. 본인의 정치적 신념을 비롯해 살아온 환경, 해석 등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다만 문제는 지나치게 한쪽으로 편향돼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고 다른 사람한테 강요하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가짜 뉴스와 같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에 오롯이 의지해 자기 생각을 견고하게 만들어 나가는 극단적 자세를 주의해야 한다”며 “특히 성경의 어떤 원리보다도 자신의 정치적 이념이나 신념을 더 중시하는 건 기독인의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어느 입장을 취하고 있든지 간에 기독인으로서 겸손하게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입장을 청취해야 한다”며 “성경을 통해 ‘내 생각에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 ‘내 의견에는 어떤 허점이 있는지’ 등에 대해서 선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개인 정치적 견해가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투영해선 안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다만 교회 안에서 정치적인 신념을 무시하고 져버리는 것이 아닌, 토론의 장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나의 공동체인 우리는 같은 하나님을 믿는 자녀로서 서로 비난하고 손가락질해선 안 된다”면서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조정하고 협의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성숙한 자세로 상대방이 왜 그런 생각을 가졌는지,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