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6주 50만원’ 무감각해진 낙태 수술 버젓이, ‘먹는 낙태약’까지

입력 2025-01-06 14:30 수정 2025-01-06 16:20
#1. 젊은이들이 몰리는 서울의 A 산부인과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원치 않은 일 쉽게 말 못 할 고민이 생기셨나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한번 스크롤을 내리자 ‘6주까지 50만원’라는 볼드체 문구가 방문객의 시선을 끌었다. 병원에서 ‘당일 예약과 수술이 가능하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수술은 다름 아닌 임신중절수술(낙태)다.

#2. 서울 강남구의 한 산부인과에서 근무하는 B전문의는 6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최근 쉽게 낙태를 결정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B전문의는 근무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안 하는 의료진으로 꼽힌다. 그는 “예전에는 (낙태 수술하는 것을) 조심스러웠는데 요즘에는 안 그렇다. 여성의 연령대부터 낙태 이유까지 다양하다”며 “임신 후기 수술은 산모에게도 굉장히 위험한데 의료진 만류에도 하는 이들이 간혹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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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낙태’ 가능해진 한국, 20년 가까이 낙태 1위

병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낙태 수술 비용을 버젓이 홍보하며 심사숙고 없이 ‘쉬운 낙태’가 가능해진 현실은 생명을 대하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지난해 임신 36주 된 태아를 낙태하는 과정의 브이로그 영상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한국은 20년 가까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과 낙태 1위라는 부끄러운 오명을 갖고 있다. 낙태에 관한 법률이 부재한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낙태 수술의 건강보험 적용과 먹는 낙태약 도입 등을 권고한 상황이 최근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의 한 산부인과는 홈페이지를 통해 임신중절 수술 비용을 홍보하고 있다. 홈페이지 캡처


인권위, ‘먹는 낙태약’ 및 낙태 수술 건강보험 권고

6일 국민일보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임신중지 권리 미보장으로 인해 여성의 인권이 침해됐다”며 정부에 낙태 관련 의료서비스를 공공보건의료에서 제공하고 낙태 의약품과 수술, 수술 후 의료서비스 등에 건강보험을 적용할 것을 권고했다. 또 임신중지 의약품을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해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장지영 이대서울병원 웰니스센터 소화기내과 교수는 지난달 말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교수는 이날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인권위의 권고는 정부의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는 인권위는 미래 국민인 태아의 생명을 위협한 위험한 결정을 하고 있다. 동물 학대에 대해 분노하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인간의 생명 학대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헌재 결정을 ‘무제한 낙태’ 허용으로 해석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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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헌법재판소가 임신중절죄(낙태죄)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6년이 지났음에도 현재 국회에서는 후속 입법이 제정되지 않았다. 장 교수는 “헌재의 2019년 결정은 생명을 훼손하는 모든 행위는 불법이지만 낙태가 이뤄지는 현실을 고려해 임신 22주를 낙태 허용의 상한선으로 판단했다”며 “또 헌재가 임부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우선하는 권리인지도 설명하지 않았다. 이를 자기 결정권의 온전한 보장을 위해 무제한의 낙태를 허용해도 된다고 해석하는 인권위의 결정은 타당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장 교수는 낙태 관련 법안이 부재한 상황을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일부 병원에서 임신 30주 이상의 말기 낙태 수술도 암암리에 시행되고 있는 상황도 전했다. 그는 “특히 30주 이상의 낙태 수술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산모의 생명도 위협한다”고 했다.

낙태, 여성의 건강 심각하게 위협

그동안 교계 프로라이프 진영에서는 헌재가 낙태 허용 상한선을 언급한 것에 대해 생명 존중의 가치가 발달 단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는 근본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나, 부득이하게 낙태 시기를 판단한다면 여성의 몸에 미치는 악영향을 고려할 때 임신 8~10주 이전이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시기로 봤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한국 의료계는 임신 중기 이후 약물 또는 시술을 통한 낙태는 골반염, 불임 등 여성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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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위에 오른 먹는 낙태약의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한 이명진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위원장에 따르면 먹는 낙태약은 두 가지 방식으로 작용한다. 하나는 태아에게 공급되는 혈관을 차단해 영양공급을 끊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자궁을 수축시켜 태아를 밖으로 밀어내는 식이다. 이 회장은 “이 약물은 성공률이 약 70%에 불과해 30%는 실패한다. 실패 시 여성에게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약물 낙태의 부작용 심각

그러면서 약물 낙태의 부작용으로 출혈, 태아 잔여물 미배출로 인한 재수술, 지속적인 과다출혈로 인한 사망, 자궁 유착, 골반염, 불임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위원장은 “실제로 약물 낙태 경험자의 70% 이상이 출혈 등의 합병증을 겪었다는 보고가 있다. 그래서 산부인과에서도 임신 초기 외에는 이 약물 사용을 권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날 인권위의 권고에 반대 뜻을 밝힌 행동하는프로라이프(행프)는 인권위에 먹는 낙태약 도입 권고 등에 대해 철회 요청과 함께 근거 자료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봉화 행프 상임대표는 “태아 생명 보호와 관련한 법적 조치를 촉구하고 사회적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김아영 김수연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