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허덕이는 정유사들이 지속가능항공유(SAF), 바이오선박유, 액침냉각 사업 등 ‘비(非)정유’ 사업 포트폴리오를 늘리며 활로를 찾고 있다.
고성장이 기대되는 SAF 사업이 대표적인 비정유 신사업이다. SK에너지는 5일 코프로세싱(기존 공정에 석유 원료와 바이오 원료를 함께 넣어 석유제품과 저탄소 제품 생산) 방식으로 폐식용유 및 동물성 지방 등 바이오 원료를 가공해 만든 SAF를 유럽으로 수출했다고 밝혔다.
SAF는 동·식물에서 유래한 바이오매스, 대기 중 포집된 탄소 등을 기반으로 생산돼 기존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량을 80%까지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연료다. 각국의 탄소중립 흐름에 따라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모더인텔리전스에 따르면 2021년 7억4550만 달러 수준이던 SAF 시장 규모는 오는 2027년 215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SK에너지는 유럽연합(EU)이 SAF 사용 의무화를 시행한 직후 수출에 성공했다. EU는 이달부터 유럽 지역에서 이륙하는 모든 항공기에 대해 최소 2%의 SAF를 혼합해 사용하도록 의무화했다. 한국도 2027년부터 국내에서 출발하는 모든 국제선 항공편에 SAF를 1% 혼합 급유화하도록 의무화한다.
앞서 HD현대오일뱅크도 지난해 6월 일본 ANA항공(전일본공수)에 SAF를 공급하며 국내 최초로 SAF를 수출한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 GS칼텍스도 그해 9월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 제도(CORSIA) 인증을 받은 SAF를 일본에 수출했다.
기존 선박유에 바이오디젤을 혼합한 바이오선박유도 국제해사기구(IMO)의 2050년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수요 급증이 예측된다. 바이오선박유를 사용하면 탄소 배출량이 기존 선박유 대비 65~80% 이상 절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2월 국내 최초로 초저유황 바이오선박유를 해외 선사에 수출했다. GS칼텍스는 국내 정유사 최초로 바이오연료 관련 국제 친환경 인증인 ISCC EU를 획득했다.
데이터센터,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겨냥한 액침냉각 시장 공략도 본격화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세계 최대 액침냉각 시스템 기업인 GRC로부터 액침냉각 전용 윤활유 ‘엑스티어 E-쿨링 플루이드’의 일렉트로세이프 프로그램 인증을 획득했다. 에쓰오일도 지난해 10월 인화점 섭씨 250도(℃) 이상의 고인화점 액침냉각유 ‘에쓰오일 e-쿨링 솔루션’을 출시했다. GS칼텍스는 2023년 자체 액침냉각유 브랜드인 ‘킥스 이머전 플루이드S’를 출시하며 열관리 시장에 진출했다.
정유업계가 체질 개선에 사활을 건 이유는 원유 정제 사업만으로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한 탓이다.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지난해 3분기 합산 영업 손실은 1조4000억원을 넘겼다. 4분기는 전분기 대비 흑자 전환이 예상되지만 실적 개선 폭이 크지 않을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계엄 및 탄핵 정국으로 1470원대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이 실적 발목을 잡고 있다. 정유사는 원유를 전량 달러로 수입하는 탓에 환차손이 불가피하다. 이춘길 SK에너지 울산CLX 총괄은 “국내·외 SAF 정책 변화와 수요 변동 등 시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SAF 생산, 수출 확대를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