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희망찬 새해를 기대하며 신년 표어를 발표했다. 표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닌 교회와 성도 삶을 인도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교회가 특성과 상황에 맞게 의미있는 표어를 정해야 하는 이유다.
경기도 안산제일교회(허요환 목사)는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우리들’을 올해 표어로 선정했다. 교회는 ‘돌봄’을 큰 주제로 축소사회,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상실, 우울증의 현실을 위로하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고자 이 문구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경북 포항제일교회(박영호 목사)는 올해 표어를 봄 돌봄 돌아봄의 ‘봄봄봄’으로 정했다. 서울 광림교회(김정석 목사)는 ‘감추어진 복음의 풍성함을 누리며 전하는 교회’로 신년 표어를 택했다. 오륜교회(주경훈 목사)는 ‘너는 복이 될지라’를 신년표어로 삼았다. 표어에는 ‘하나님의 복’이 절실한 때 사도행전 속 아브라함의 복이 개인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바람이 담겼다.
교회는 이런 표어를 어떤 과정으로 선정할까.
지난 9월 경기도 안산생수교회(조원근 목사) 홈페이지에는 ‘2025년 교회 표어 공모전!’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작성자인 조원근 목사는 “1등에서 3등까지 시상하며 1등으로 뽑힌 표어는 2025년 생수교회 표어로 사용한다”며 “내년도 안산지역 복음화, 관공서와 소통해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을 섬기고 세계선교대회를 섬길 예정”이라며 목회 계획을 밝혔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표어 선발 기준을 제시하고 지난해 12월 말 교인 투표를 통해 1등을 선발했다.
그렇게 선발된 표어는 35세 청년이 공모한 ‘사랑으로 전도하고 세계로 나가는 교회’다. 조 목사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교회가 이러한 방식으로 표어를 선정한 것은 처음”이라며 “평신도가 함께 교회를 성장시키는 동역자로서 새해 붙잡고 움직일 표어에 공감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기회를 통해 성도들과 함께 교회의 방향을 고민해봤다는 점이 좋았다”며 “목회자로서 성도들이 지향하는 교회 방향성을 목회에 참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회나 교역자들의 숙고에 따라 표어가 결정되는 교회도 있다.
서울 영안교회(양병희 목사)는 교역자들이 함께 올해 표어를 뽑았다. 교역자들의 기도 끝에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는 영안공동체’가 표어로 발탁됐다. 교역자들은 가정과 교회, 사회와 국가가 방향과 정체성을 잃은 채 살아가는 현 시대의 혼돈에 공감했다. 양병희 목사는 “이럴 때일수록 교회는 성경적 세계관에 근거해 신앙의 중심으로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공동체가 돼야 함을 느꼈다”며 “기도하고 말씀을 섬기는 것에 집중해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귀 기울이고 기쁘신 뜻을 이루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영락교회(김운성 목사)는 당회의 결정에 따라 ‘은혜의 80년 이제 거룩한 땅에서 비상하라’를 표어로 잡았다.
오랜 기간 품었던 기도 제목과 붙잡은 말씀이 교회 신년 표어가 되기도 한다. 박이삭 빛고을광염교회 목사는 지난달 31일 교회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올해 표어를 ‘회심의 열매를 맺는 교회’로 택했다고 발표했다. 박 목사는 이날 국민일보에 “한 달간 교회 표어를 무엇으로 정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다”며 “지난 목회 성도들이 제출한 기도제목을 돌아보며 성도들이 가장 중시하고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 가정 구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이어“성도 개개인이 품는 기도 제목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오륜교회는 지난해 연중 말씀 시리즈였던 사도행전 내용을 올해 표어로 삼았다. 주경훈 목사는 “교인들이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으므로 이를 자기 삶의 실천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NCD교회개발원 대표 김한수 목사는 “표어는 교회 목회를 살펴보는 평가표의 의미”라고 표현했다. 김 목사는 “교회는 개인 단위, 소그룹 단위, 교회 단위의 목표와 표어를 설정하도록 도와야 한다”며 “성도가 표어에 대해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1년 네 차례 이상 표어를 주제로 설교를 진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는 표어가 1년 단위라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목사는 “표어가 교회의 방향성이라는 생각으로 3년 5년처럼 장기 목표를 표어로 세울 수 있다”며 “표어에 약간의 변화만 줘 같은 주제로 구체화하거나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박윤서 김동규 이현성 기자 pyun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