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만 주면 이웃 사랑? “원칙 정하고 따뜻하게”

입력 2025-01-05 12:44 수정 2025-01-05 13:02
경기도 부천성만교회가 인근에 차린 '행복한식당'은 70세 이상 어르신에게 1000원의 자존심 비용만 받고 식사를 제공한다. 부천성만교회 제공

새해를 맞아 한국교회가 구제의 방식과 원칙을 재정비하며 이웃사랑을 더 따뜻하고 효과적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70세 이상은 1000원’. 경기도 부천성만교회(이찬용 목사)가 운영하는 ‘행복한 식당’ 간판 옆에 적힌 문구다. 지난 3일 식당 앞에는 오픈 30분 전부터 어르신들이 길게 줄을 섰다. 여느 기사식당 못지않은 푸짐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이곳은 지역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이찬용 목사는 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무료로 제공하기보다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상징적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70세 이하 요금은 7000원이다. 이 목사는 “이 가격은 어르신들의 당당한 식사를 보장하고, 지역 상권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이 교회는 3년째 ‘행복한 적자’를 감수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지난 3일 경기도 부천성만교회 행복한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 부천성만교회 제공

양보다 중요한 ‘어떻게’
문화체육관광부의 ‘한국의 종교 현황’을 보면 각 종교계가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중 개신교는 전체 529곳 중 259곳(49%)으로 가장 많다. 그러나 2023년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서는 가톨릭이 사회봉사 활동을 더 활발히 한다는 평가받았다(29.4% vs. 개신교 20.6%). 구제의 양보다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교회의 구제 활동이 온기를 잃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희소병을 앓는 딸의 치료비를 마련하려 전국 교회를 찾은 전요셉 목사를 동행 취재했다. 당시 적지 않은 교회가 그를 문전박대하며 기도 요청마저 거절했다. 전 목사는 “어떤 교회 마당은 겨울 추위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교회도 어려움은 있다. 방현섭 서울 좋은만남교회 목사는 과거 개척 초기 교회로 찾아온 한 노숙자와의 사연을 소개했다. 차비를 요청한 남성을 차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고 만원을 건넸지만 남성은 “너무 적다”며 화를 냈다고. 방 목사는 “좋은 의도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준비 부족이 문제였다”고 털어놨다. 이 일은 그의 구제 사역을 다시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이 같은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따뜻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백석대 장창영 교수는 “목적이 좋으면 방법도 좋아야 한다”며 유대인의 구제 방식을 참고할 것을 제안한다. 유대인들은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지키고 자립을 돕는 구제”를 최우선 원칙으로 삼는다. 이는 교회 구제 활동에도 적용 가능한 가치다.

방 목사는 “돕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략 없는 선행은 상처로 돌아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금전 대신 쌀, 옷, 잠자리 등 필요한 것을 제공하고 노숙인 쉼터나 고향으로 가는 여정을 돕는다. 그는 “원칙은 나를 지키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며 “구제에도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칙과 환대의 조화
서울광염교회(조현삼 목사)는 환대와 체계적 구제를 조화롭게 실천하는 대표적인 교회다. 교회의 모든 재정 입출금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예산의 30% 이상을 구제, 선교, 장학금으로 집행한다. 절기헌금 전액은 구제비로 집행하는 재정 원칙이 잘 알려져 있다. 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이에게도 철저한 원칙을 적용한다. 한 끼 식사비용은 될 수 있는 대로 지원하되 현금보다는 쌀 지원을 우선한다. 특히 쌀은 소주로 바꾸지 못하도록 포장을 뜯어 전달한다. 교인들을 통해 들어 온 30만원 이하 구제 요청은 조건 없이 지원하며 초과 금액은 실사를 통해 결정한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 지난달 30일 전남 무안공항에 부스를 설치하고 유가족에게 생필품과 음식을 나누고 있다. 서울광염교회제공

이랜드복지재단(대표 정영일)의 긴급 구제를 담당하는 SOS위고봉사단도 철저한 원칙에 따라 이웃을 돕는다. 이들은 지원 요청이 들어오면 3일 내 실사를 통해 도움을 제공하지만, 만성적 어려움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 정영일 이랜드재단 대표는 “우리는 ‘돕는다’ 대신 ‘선물한다’고 표현해 상대방의 자존심을 지킨다”고 말했다.

경기도 온생명교회(안재경 목사)는 홈페이지에 구제와 관련한 원칙을 공개한다. 구제 기준을 명확히 설명해 오해를 방지하고 구제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