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를 반대하는 국무위원들에게 “종북 좌파들을 이대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 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배석자들에게는 “지금 계획을 바꾸면 모든 게 다 틀어진다”며 계엄을 강행했다. 윤 대통령 측은 계엄 실패 이후 ‘경고성 계엄’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검찰은 윤 대통령이 치밀한 준비 하에 계엄을 진행했고, 국회의 해제 의결 후에도 계엄을 이어가려 한 정황을 다수 확보했다.
4일 국민일보가 확보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공소장에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 등이 야당을 국가안보와 사회안전을 위협하는 반국가세력으로 인식하는 한편 선거관리위원회 보안시스템의 취약성이 선거 결과에 부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고 적시했다. 공소장에는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총 141회 언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수사 결과 윤 대통령은 총선을 앞둔 지난해 3월말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에서 당시 경호처장이었던 김 전 장관, 신원식 당시 국방부 장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과 식사하면서 “비상대권을 통해 헤쳐 나가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6월에도 김 전 장관 등과 식사하면서 시국상황에 대해 얘기 했고 김 전 장관은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여 사령관,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강호필 지상작전사령관을 지목하며 “이 4명이 대통령께 충성을 다하는 장군”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일 김 전 장관을 불러 “감사원장과 검사 3명까지 탄핵하는 것은 사법뿐만 아니라 행정까지 마비시키는 패악질”이라며 “국가 비상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상계엄시 병력 동원 등에 대해 물었다. 김 전 장관은 당시 미리 준비해뒀던 계엄 선포문 등을 보고했고 윤 대통령은 ‘야간 통행금지’ 부분을 삭제하는 등 보완을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수정한 선포문 등을 보고하자 윤 대통령은 “됐다”고 말하며 승인했다고 한다.
국무위원 반대에도 “지금 바꾸면 모든 게 틀어져”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점심 무렵부터 오후 9시30분 사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에게 소집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대통령실로 들어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한 전 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현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외신인도 하락, 외교 및 경제 영향 등을 이유로 비상계엄 선포를 반대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 국무위원의 상황 인식과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다르다.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윤 대통령은 오후 10시17분~22분쯤 자리에 모인 국무회의 구성원 11명에게 “지금 계획을 바꾸면 모든 게 틀어진다. 언론에 특별담화도 다 얘기했고, 문의도 빗발치는 상황이다. 발표를 해야 하니 나는 간다”고 말한 후 대접견실을 나왔고, 그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최 경제부총리에게 비상계엄 선포시 조치사항 문건을 건넸는데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 지원금, 임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 포함 완전 차단할 것, 국가비상 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등이 기재돼 있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후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집결하고 있던 지난 4일 오전 0시30분~1시쯤 이진우 사령관에게 전화해 상황을 물었고 이 사령관은 “사람이 많이 국회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고 해”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의원 수가 의결 정족수에 가까워지자 재차 전화해 “뭐하고 있냐. 문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 총을 쏴서라도 끌어내라”고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가결 후에도 이 사령관에게 전화해 “국회의원 190명 들어왔다는데 실제로 190명이 들어왔다는 것은 확인도 안 된다” “그러니까 내가 계엄 선포되기 전에 병력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는데 다들 반대해서…” “해제됐다 해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 선포하면 되니까 계속 진행해”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 측은 현장 사령관에게 국회의원 체포 지시를 한 적 없고, 경고성 계엄이었을 뿐 국회 의결에 따라 즉시 해제했다고 주장하지만, 검찰 수사 내용은 이 같은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은 윤 대통령 등과 순차 공모해 군 병력을 국회의사당에 침투시켜 국회의원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의결을 저지하고, 국회 무력화 후 별도 비상 입법기구 창설 등 국헌문란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고 적시했다. 검찰은 비상계엄 선포 후 무장 군인 1605명과 경찰 3144명이 국회, 선거관리위원회 통제 및 체포 작전 등에 동원됐다고 밝혔다.
공소장에 따르면 국회에 병력을 출동시킨 1공수여단은 지난 4일 유사시 사용할 실탄 5만400발을 차량에 적재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 1공수여단은 유사시 A대대가 쓸 목적으로 소총용 5.56mm 실탄 2만3520발, B대대가 쓸 목적으로 소총용 5.56mm 실탄 2만6880발을 탄약 수송차량에 적재하고 즉시 공급 가능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나성원 김재환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