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에 총기 소음기 광고 수천개… 자동차 부품으로 위장

입력 2025-01-04 00:42
한 총기 전문 유튜버가 총기 소음기 리뷰를 하는 모습. 해당 유튜브 영상 캡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수천개 광고가 자동차 부품으로 위장한 총기 소음기를 홍보하고 있다고 미국 IT 전문매체 와이어드가 보도했다.

와이어드는 3일(현지시간) “여러 페이스북 페이지가 ‘연료 필터’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총기 소음기로 사용될 수 있는 제품을 광고하고 있다”며 “미국 법률로 엄격하게 규제되는 물품으로 미군 관계자들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페이스북 페이지는 기업 등이 주로 브랜드나 제품 홍보를 위해 운영하는 계정이다. 페이스북 운영사 메타는 자사 플랫폼에서 총기 소음기 광고를 금지하고 있지만 해당 광고는 수년간 지속돼 왔다고 와이어드는 지적했다.

매체는 “이 광고들은 100개 넘는 페이스북 페이지 네트워크를 통해 운영된다”며 “가격은 50달러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해당 제품은 약간만 변형하면 총기 소음기로 쉽게 개조할 수 있다고 한다.

한 광고 영상에서 남성은 “겉으로는 절대 소음기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제품들 있잖아요. 반대편에 구멍이 없기 때문에 소음기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음기를 소유하기 위한 서류 절차 없이도 이 제품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소음기가 아니니까요”라며 해당 제품이 사실상 소음기임을 강조했다.

이들 광고는 주로 같은 문구를 반복하며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난 항공 등급 알루미늄’을 사용했다는 점을 내세운다. 광고에는 총기 애호가들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이 사용된다. 원작자들은 자신의 콘텐츠가 광고에 사용된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와이어드는 덧붙였다.

한 광고에는 ‘블랙 칼라 암스(Black Collar Arms)’라는 글자가 새겨진 소음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 소음기 제작사 공동 소유자 제레미 맥소어리는 해당 광고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와이어드에 밝혔다. 그는 블로그와 유튜브에 올린 자신의 영상이 광고에 사용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연방정부 승인 없는 소음기 구매나 제조는 중범죄 혐의로 이어질 수 있다. 소음기를 합법적으로 구매하려면 신원조회를 통과해야 한다. 연방 주류·담배·화기·폭발물단속국(ATF)에 수수료를 내야 한다. 스스로 제작할 수 있지만 반드시 ATF에 등록해야 한다.

문제의 광고들은 이런 규정을 언급하지 않은 채 법적 위험을 알지 못할 수 있는 구매자를 대상으로 판매되고 있다고 와이어드는 지적했다.

ATF는 2023년 11월 연방 총기 면허업자들에게 ‘솔벤트 트랩(solvent traps)’이라는 이름으로 소음기를 판매하는 행위를 경고했다. 이 장치는 총기 청소 과정에서 기름과 잔여물을 모으기 위한 용도로 광고되지만 실제로는 소음기로 사용될 수 있다. ATF는 제품 이름이 아니라 기능성에 따라 규제를 받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와이어드가 2800개 이상 광고를 분석한 결과 이들은 수백개 전자상거래 웹사이트와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이들 사이트는 IP주소를 공유하며 저품질 복제 제품과 함께 ‘연료 필터’를 판매하고 있었다. 일부는 구글에 피싱 사기로 표시되기도 했다.

사이버 보안 회사 ‘사일런트 푸시’의 잭 에드워즈 선임 연구원은 중국을 기반으로 한 드롭시핑(dropshipping)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운영자가 수백개 웹사이트를 생성해 제품에 중간 가격을 추가한 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홍보하는 방식이다.

메타는 총기와 소음기는 물론 관련 개조품을 홍보하는 광고를 금지한다. 와이어드가 분석한 광고 중 삭제된 경우는 최소 74개에 불과했다. 와이어드가 메타에 문의한 뒤 해당 광고와 관련된 계정들이 삭제됐지만 메타의 광고 라이브러리에서는 유사한 광고들이 여전히 게재되고 있었다고 한다.

메타 대변인은 와이어드에 “악의적 행위자들은 단속을 피하기 위해 지속해서 전술을 변화시키고 있다”며 “우리는 금지된 콘텐츠를 식별하고 제거하기 위해 도구와 기술에 계속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도 이 광고에 주목하고 있었다. 와이어드가 입수한 국방부 내부 자료는 ‘연료 필터’ 광고가 펜타곤의 군사용 컴퓨터에도 노출된 점을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메타의 정교한 광고 타겟팅 도구가 총기 애호가나 군인들을 쉽게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잠재적 사용자 수는 약 4만6134명이라고 와이어드는 부연했다.

현재 미국에서 등록된 소음기는 약 500만개로 2017년 130만개에서 크게 늘었다.

지난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루이지 망기오네(26)는 3D 프린터로 제작된 총기와 소음기를 사용해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유나이티드헬스케어 최고경영자(CEO) 브라이언 톰슨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와이어드는 “이 광고 문제는 단순한 플랫폼 정책 위반을 넘어 국가 안보와도 연결된 중요한 사안으로 부상 중”이라고 해설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