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행사서 울려퍼진 “예루살렘~” 멜로디… 김정은도 활짝

입력 2025-01-02 17:40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 경축공연이 평양 5월1일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북한의 신년 경축 공연 행사 도중 유명 성가곡 ‘거룩한 성’의 멜로디가 울려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중앙TV는 지난달 31일 평양 ‘5월1일 경기장’에서 열린 신년 경축 공연 녹화본을 지난 1일 방송했다. 해당 영상에는 김 위원장 집권 후 북한이 애국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만든 ‘우리의 국기’라는 노래를 공연단이 부르는 모습이 담겼다.

이 노래는 일부 구간이 편곡된 상태로 나왔는데, 편곡된 부분 20초가량이 유명 성가인 ‘거룩한 성’과 멜로디가 거의 일치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원곡에 “예루살렘 예루살렘~”이라는 가사가 들어있는 부분은 가사가 빠진 채 “아~”라는 후렴의 멜로디로 대체됐다는 것이다. 거룩한 성은 스테판 애덤스가 1892년 작곡한 작품으로 알려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가다. 가사에는 예루살렘이 다시 영광을 되찾는 내용 등이 담겼다.

유명 찬송가 ‘거룩한 성’의 악보(왼쪽)와 북한 노래 ‘우리의 국기’의 코드가 변형된 악보(오른쪽). 강동완 동아대 교수가 음악 전문가 등을 통해 북한 노래 ‘우리의 국기’의 코드를 유명 찬송가 ‘거룩한 성’의 코드와 맞춰서 바꿔보자 악보의 형태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동완 동아대 교수 제공

강동완 동아대 교수에 따르면 해당 부분의 멜로디는 거룩한 성의 코드만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거룩한 성의 코드는 ‘Em’, 북한의 우리의 국기는 ‘Cm’인데 이 코드를 ‘Em’으로 바꾸면 멜로디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게 강 교수의 설명이다. 코드를 바꾸지 않고 들어도 두 노래의 멜로디는 흡사하게 들린다.

김 위원장은 이 멜로디를 공연단이 부르는 중 활짝 웃으며 오른쪽에 앉은 박태성 내각총리와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조선중앙TV에 포착됐다. 김 위원장 왼쪽에 있는 딸 주애도 웃으며 노래를 감상했다. 분석 대로라면 종교를 사실상 인정하지 않고 김정은 우상화 작업에 열심인 북한에서 최고 지도부가 세계적인 성가의 멜로디를 감상하며 즐거워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된 셈이다.

편곡 담당자가 해당 멜로디가 성가 일부인 것을 모르고 삽입했을 가능성도 거론된다. 강 교수는 “거룩한 성을 중국어로 바꾼 버전도 있기 때문에 편곡자가 (성가인 줄) 모르고 편곡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과거 한국 걸그룹 여자친구의 ‘핑거팁’이라는 노래를 북한 가요 ‘우리를 부러워하라’ 멜로디에 가져다 쓰는 등 베끼기를 한 전례가 있다. 당시에도 멜로디만 새로운 형태로 변경해 선전·선동을 위한 표절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강 교수는 “정확한 의도를 알기는 어렵지만 20초가 넘는 분량의 멜로디를 가져다 썼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부분”이라고 해석했다.

박준상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