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과 북한·러시아의 군사 협력 강화,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진 한국 정치의 혼돈으로 올해 한반도의 안보 상황에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워졌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미북 정상회담 실무를 담당한 랜달 슈라이버 전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국민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한국은 미국의 일류 동맹국(first tier ally)”이라며 “한미 동맹은 여러 정당과 정파를 거치면서도 매우 견고하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취임 이후 한미 동맹 심화 방안에 대해 “한국은 높은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고, 미국의 주요 투자국이자 군사 장비 구매국이라는 점을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에게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슈라이버 전 차관보는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직접 회담에 나설 경우 한국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그렇게 된다면) 큰 실수(Big mistake)가 될 것”이라며 “미국은 한국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트럼프 당선인이 내각과 참모 인선을 마무리하던 지난 6일 워싱턴 DC의 한 호텔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국의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가 한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아직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것은 한미동맹이 수십 년 동안 한국과 미국의 여러 정당, 여러 정파를 거치면서 매우 견고하다는 것이 입증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이 해결되면 우리는 매우 강력한 동맹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동요 지점은 아직 알 수 없다.”
-미국에서는 한국의 계엄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우려를 내놓았다. 이것이 일종의 경고라는 분석도 있다.
“우리는 한국이 얼마나 빨리 계엄령을 거부했는지, 그리고 국회의원이 군인들을 밀어내고 들어가서 대통령의 결정을 뒤집는 투표를 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제도와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오판에 대한 비판과 함께 한국 국민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 일을 축하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을 ‘머니머신’이라고 부르며 방위비를 거의 9배 가까이 올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방위비분담협정(SMA)이 타결됐기 때문에 해결되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재개를 결정할지 모르겠지만, (재개한다면) 그것은 협상의 문제일 것이다. 한국은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칠 수 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이 매우 높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미국) 군 지원 측면에서 매우 관대했다. 또 한국은 미국 군사 장비의 주요 구매국이다. 한국은 미국의 주요 투자국이다. 한국은 스스로 국방을 책임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좋은 파트너이며,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미국의 일자리를 돕고 있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차기 행정부에 (한국이) 이런 부분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1기 재임 시절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트럼프 2기에도 그런 시도가 다시 있을 수 있을까.
“내가 (트럼프) 대통령의 속마음을 알 수는 없다. 다만 트럼프가 첫 임기 때 그 발언을 했을 때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협상에서 지렛대를 얻기 위한 움직임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에) 의회가 동의할 가능성은 작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2기에는 한미일 삼각 협력이 바이든 행정부만큼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 1기 때도 한일 관계가 어려웠지만, 한미일 3국이 협력했다. 그래서 그 관계가 바뀌거나 약화할 것이라는 징후는 전혀 없다.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트럼프 행정부가) 해체할 것이라는 징후도 전혀 없다. 한미일 협력은 바이든 행정부 이전에도 존재했다. 지도자(대통령) 수준은 아니었지만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미국 대선 당시 조현동 주미대사를 만났는데 한미 관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나는 미국과 한국은 어떤 정당이 집권하든 항상 굳건한 동맹 관계를 유지해왔고, 한국이 이미 하고 있는 일들이 차기 행정부에서도 강조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한국이 정말 일류 동맹국(first tier ally)이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사례가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행동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을 전달한 것 같다.”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톱다운방식의 정상회담을 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김정은이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트럼프도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만약 그들이 지도자급에서 다시 관여하기에 적절한 환경이 조성된다면,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당시 중단된 부분에서 다시 시작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하노이에서는 합의가 없었고 북한은 무기 시스템에서 계속 진전을 이뤘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이 정상 차원에서 다시 관여한다면 그 대화가 비핵화뿐만 아니라 안보에 대해 더 광범위하게 이야기하고 그들의 재래식 능력과 한국을 향한 위협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런 만남이 있다면 하노이에서 중단한 부분에만 얽매이지 않고 생산적인 논의가 되기를 바란다.”
-김정은은 북한군을 파병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밀착하고 있다.
“김정은은 푸틴과의 관계와 군사적 능력의 발전으로 지금 다른 위치에 있다. 만약 (미북 정상) 회담이 성사된다면 김정은은 트럼프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다른 수준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미국 본토를 조준하고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는 러시아라는 강력한 동맹을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김정은은 2019년에 비해 자신감과 위상, 힘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북미 협상이 한국을 소외시키고 진행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남북 관계가 교착된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이 패싱 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렇게 된다면) 큰 실수(Big mistake)가 될 것이다. 우리는 한국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지난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한국 정부도 북한과 관여하고 있었다. 한미 둘 다 북한에 관여하고 있었음에도 때로는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국 정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이 다시 북한과 관여에 나선다면 한국도 매우 긴밀하게 집중하길 바란다.”
-북한이 핵무기 능력을 고도화하면서 한국에서 독자적인 핵무장에 대한 논의가 커질 수 있다. 한국의 자체 핵 개발이나 전술 핵무기의 한반도 재배치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한국의 안보를 어떻게 보호하고 강화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한국 스스로 할 일이다. 한국이 독자적 핵무기를 보유하면 더 안전할까 덜 안전할까 분석하는 것은 중요한 과정이다. 그런 조치는 일본도 핵무장을 하도록 할 수 있다. 그래서 한국이 독자적인 핵 능력이 필요하다고 결정하고 일본이 그런 결정을 내린다면, 그것은 미국이 확장억제에 대한 충분한 신뢰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미국인으로서 나는, 한국이 미국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느끼는 그런 지점에 도달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알렉스 웡 백악관 국가안보부보좌관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한과의 대화에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는 북한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을 훨씬 뛰어넘는 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됐다. 국가안보부보좌관은 기본적으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매우 광범위한 업무를 담당한다. 그래서 그의 임명은 북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군축 협상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나는 이 시점에서 트럼프 팀이 그 전략을 그 정도 수준까지 세부적으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지난 30년 동안의 증거를 보면 외교만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어떤 행정부든 그런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약속대로 우크라이나전을 조기에 끝날 수 있을까?
“매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푸틴이나 젤렌스키(우크라이나 대통령) 어느 쪽도 전쟁을 종식할 동기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푸틴은 북한군을 전투에 끌어들이고 우크라이나 동부의 일부 지역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전투를 중단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젤렌스키도 우크라이나 영토의 상실을 허용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부 정치에 과도한 영향력을 갖도록 허용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국 견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떻게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미국의 입장을 강화할 것이다. 관세부터 시작해 수출 통제, 투자 제한 등 주로 경제 분야가 될 것이다. 나는 미국과 한국이 이런 문제에 대해 서로 논의하고 이견을 조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수출 통제의 경우에는 미국만 단독으로 행동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한국의)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균형을 선호하지 않는다. 중국의 역량이 커지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현상 유지를 위협하는 행동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국가로서, 국제법을 중시하고 국제 규범을 중시하며 평화적 분쟁 해결에 관심을 갖는 한국이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 않고 미국과 함께하기를 바란다.”
-당신은 ‘중국 공산당 견제하기’라는 보고서를 트럼프 인수팀에 전달한 바 있다. 미국은 왜 중국 견제를 최우선 순위가 놓고 있는 것인가?
“우리 보고서의 제목은 중국이 아닌 중국 공산당에 대한 대응이었다. 우리는 중국 인민에 대해 호의적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국인들의 자유와 기업가 정신, 야망을 가로막는 정당이다. 중국 공산당은 동중국해, 남중국해, 대만 등 지역 질서에서 현상 유지를 방해할 계획을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이며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미국과 어디까지 함께 할 것인지는 한국이 결정해야 한다.”
◆랜달 슈라이버(Randall Schriver)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인 2018년 1월 국방부 인도·태평양 담당 차관보로 임명돼 2019년 12월까지 2년 가까이 미국의 한반도 관련 국방 정책을 총괄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세 차례 정상회담에서 핵심 실무자로 참여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인사 중 한미 동맹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가 높은 인사로 평가받는다. 해군 정보 장교 출신으로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역임했다. 현재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프로젝트2049 연구소’ 의장을 맡고 있다.
워싱턴=글·사진 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