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원장, 사법부 흔들기에 “공화국 훼손 용납 못해” 공개 경고

입력 2025-01-01 09:52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

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판결 불복과 사법부 비난에 대해 “위험하다”며 이례적인 비판 발언을 했다. 민주 공화 양당 등 정치권에서 입맛이 맞지 않는 판결을 한 판사를 비난하는 사례가 늘어나자 사법 독립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지난 31일(현지시간) 연말 보고서를 통해 사법부에 대한 협박과 불복, 폭력에 대해 경고했다고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판사의 업무 때문에 판사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협박, 반항은 우리 공화국을 훼손하고 있다”며 “전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썼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판사를 향한 적대적 위협이 3배 이상 증가하는 등 판사를 향한 폭력이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에 따르면 1979년까지 단 한 명의 연방 법관만 살해당했는데, 사법 업무와는 무관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판결에 대한 대응으로 판사나 가족이 살해된 사건이 6건이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또 판사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가 인터넷에 노출되면서 위협에 시달리는 경우도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치인들이 이런 사태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감스럽게도 공적 인물들도 최근 판사를 협박하려는 시도에 가담했다”며 “공적 인물도 사법부의 업무를 비판할 권리가 있지만, 판사에 대한 부적절한 발언은 다른 사람의 위험한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정부 정책과 어긋나는 판결을 내린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고 비난하자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한 적 있다. 2020년에도 민주당 척 슈머 상원의원이 브렛 카바노, 닐 고서치 대법관을 비판하자 반박에 나선 바 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법원 판결에 대한 불복종도 사법부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판결 불복종과 관련해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사법 업무의 본질은 아니다”며 “대부분 사건에는 승자와 패자가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정치권 전반의 선출직 공무원들이 연방법원 판결을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망령을 키워왔다”며 “이러한 위험한 제안은 단호히 거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버츠 대법원장의 경고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을 앞두고 나온 점에 주목하는 언론도 있다. 트럼프는 그동안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면 ‘사법 시스템의 정치적 무기화’라고 비난했기 때문이다. CNN은 “대법원장은 어떤 공무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최근 몇 년 동안 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행위를 암시했다”며 “로버츠 대법원장의 연말 메시지는 연방 사법부가 조작되었다고 반복해서 비난해 온 대통령(트럼프)의 1월 20일 취임식 며칠 전에 발표됐다”고 전했다.

로버트 대법원장은 또 소셜미디어를 통한 법원 업무에 대한 허위 정보 유포 등도 사법 시스템을 위협하는 요소로 지목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