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명의 사망자를 낸 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의 트라우마 회복을 위해 사회 구성원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유가족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정신적 충격 최소화를 위해서도 참사 관련 정보를 과잉 소비하지 말고, 안정적인 일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 29일 오전 9시3분쯤 태국 방콕발 무안행 제주항공 7C2216편이 무안국제공항에서 동체 착륙을 시도하다 구조물과 공항 외벽을 들이받고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승객 175명과 승무원 6명 등 181명 가운데 179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상당수는 연말을 맞아 여행을 떠났던 가족 단위 탑승객이었다. 부모와 자녀, 손주까지 3대가 숨지거나 예비 신혼부부가 목숨을 잃는 등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하주원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홍보이사(연세숲 정신건강의학과)는 “가족 여러 명을 한꺼번에 잃게 된 유족의 충격은 매우 클 것”이라며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해외여행까지 떠날 정도로 건강했던 가족과 이별하는 것은 상당한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김동욱 회장(가람 정신건강의학과)도 “상실에 대한 ‘애도 반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이번 참사 유족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클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유가족의 상당한 트라우마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사고 사진과 영상, 관련 소식을 실시간으로 공유·소비하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또 그런 행위가 게시물을 접하는 본인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사고 영상 공유·소비는 지양…모두에게 좋지 않은 선택”
하 홍보이사는 “과거에는 거실이나 공공장소의 TV에 의해 의도치 않게 참사 소식에 노출됐다”며 “요즘은 SNS로 직접 공유하며 지속적인 노출을 스스로 유도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는 사고 소식에 간접적으로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급성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키는 ‘미디어 유발 트라우마(media induced PTSD)’를 야기할 수 있다. 심장박동 증가, 불면, 메스꺼움 등 신체적 반응과 사고 장면을 반복적으로 떠올리거나 악몽, 무력감 등의 심리적 반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김 회장은 “여객기는 누구나 탈 수 있는 교통수단인 만큼 ‘나도 겪을 수 있다’는 두려움도 클 것”이라고 했다.
사고 이후 처참한 여객기의 모습이 잔상을 남기며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해연 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장(충북대 심리학과 교수)는 “여객기 추락 사고는 이미지가 굉장히 트라우마틱하다”며 “이러한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는 것은 집단 트라우마를 형성하는 데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또 “불안감이 지속되면 예민해지고, 그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비난할 대상을 찾게 된다. 성급하게 추측성 이야기를 양산할 수도 있다”며 “그렇게 분노만 가중되는 상황은 유족에게 소외되거나,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 교수는 특히 당사자가 아닌 대중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일상을 회복하지만, 참사 유가족은 평균 4~5년 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충북대 심리학과와 TBN충북교통방송이 2022년 11월부터 1년 동안 오송 지하차도 참사 유가족과 생존자 등 3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3%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최 교수는 “참사의 심리적 후유증이 만성화된 것”이라며 “유족은 생생한 고통을 오랜 기간 반복적으로 겪게 된다”고 했다.
이처럼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구적으로 남아있는 SNS 게시물이나 악성댓글을 접하게 될 경우 심적 고통이 가중될 수 있는 셈이다. 김 회장은 “애도하는 마음으로 사고 관련 게시물을 올리거나 소비할 수 있지만 이는 애도보다 즉각적인 반응에 더 가깝다”며 “오히려 유족을 주의 깊게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 홍보이사는 “정부 차원의 심리치료 지원과 철저한 진상규명도 유가족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최 교수는 대중의 입장에서도 충격을 안정화할 수 있도록 참사 관련 정보에서 잠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참사 소식을 접하고 나타나는 급성 스트레스 반응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현상”이라며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재난사고 소식에 마음이 불안할 땐…
1.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괜찮아” 등 친절한 생각으로 자신을 다독여 보세요. 규칙적인 일상과 휴식을 유지하고, 가까이 지내는 주변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도 좋습니다.
2. 사고와 관련된 뉴스 기사, SNS 글, 영상 등에 지나치게 몰두하거나 술, 담배, 약물, 카페인 등에 의존해 감정을 외면하려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지나치게 탓하지 않는 태도도 피해야 합니다.
3. 재난사고로 인한 심리적 회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지지입니다. 특히 피해자와 유가족은 심리적 고립감을 느끼기 쉽고, 이로 인해 트라우마가 심화될 수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경청과 공감, 그리고 조건 없는 지지가 필요합니다. 사회 구성원들은 섣부른 조언이나 판단을 삼가고, 피해자와 유가족이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합니다.
한국심리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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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 박선영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