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서 빛으로…새해 여는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입력 2025-01-01 06:00
서울시향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왼쪽)과 KBS교향악단 계관지휘자 정명훈. (c)Simon van Boxtel, Takafumi Ueno

한국 클래식계의 양대 오케스트라가 새해 들어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교향곡 2번 ‘부활’을 잇따라 선보인다. 서울시향은 오는 16∼17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 지휘로, KBS교향악단은 2월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정명훈 계관지휘자와 함께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은 성악이 교향곡에 처음 들어간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 이후 다시 성악이 교향곡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작품이다. 사후에야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인정받았던 말러의 교향곡들 가운데 드물게 생전에 인기를 얻은 작품이기도 하다.

말러는 독일 낭만주의 작가 장 파울의 소설 ‘거인’에서 영감을 받아 교향곡 1번 ‘거인’을 작곡했다. 교향곡 1번 ‘거인’은 지금이야 대담한 악상이 높은 평가를 받으며 말러의 장대한 음악 세계에 들어가는 출발점으로 자주 연주되지만, 1889년 초연 당시엔 혹평을 받았다. 이후 말러는 이 작품을 1896년까지 여러 차례 개정했다.

말러가 교향곡 2번을 작곡 중이던 1892년 모습. 퍼블릭 도메인

말러가 교향곡 1번의 작곡을 처음 마친 1888년부터 시작한 교향곡 2번 ‘부활’은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대한 철학적인 작품이다. 1894년까지 긴 시간 작곡된 이 작품은 5악장의 대규모 편성 교향곡이다. 목관악기 16개, 호른 10개, 트럼펫 10개, 팀파니 3대, 대규모 혼성 합창단, 소프라노와 알토 가수 등 거대한 규모의 연주자를 대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주 시간도 무려 90분 가까이 걸린다.

말러는 꿈속에서 자신이 죽어 있는 모습을 본 데서 영감을 얻어 ‘장례식’이라는 곡을 썼다. 이 곡은 새로 시작하는 교향곡 2번의 1악장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1889년 부모님과 여동생이 차례로 세상을 뜨는 비극을 겪으며 말러는 교향곡 2번 작곡을 중단했다. 1893년에야 다시 작곡에 나선 말러는 예전에 스케치해 놓았던 선율로 2악장을 쓴 데 이어 자신의 연가곡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를 주제로 3·4악장을 완성했다.

이후 마지막 악장을 놓고 고민하던 말러에게 영감을 준 것은 평소 존경하던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죽음이다. 장례식에서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고트리브 클롭슈톡의 시 ‘부활’을 가지고 만든 노래에 크게 감명받은 말러는 클롭슈톡의 ‘부활’을 텍스트로 5악장을 완성한 뒤 1895년 자신의 지휘로 초연했다. 말러 자신은 교향곡 2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지만, 5악장 때문에 ‘부활’로 불리게 됐다. 인간의 죽음과 부활을 다룬 만큼 추모 음악회에서도 자주 연주되는 이 작품은 2024년 12월 여러 국가적 비극을 겪은 한국 국민을 위로하기에 적합해 보인다.

지난해 10월 음원으로 나온 얍 판 츠베덴 지휘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판 츠베덴은 지난해 1월 서울시향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임기 5년간 말러 교향곡 10곡 전곡(10번은 미완성 유작)을 연주 및 녹음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서울시향은 10월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로 클래식 전용 앱 ‘애플 뮤직 클래시컬’을 통해 교향곡 1번 ‘거인’ 음원을 공개했다. 올해는 교향곡 2번 ‘부활’과 교향곡 7번(2월 20~21일 롯데콘서트홀) 연주와 녹음이 예정돼 있다. 판 츠베덴은 “서울시향은 말러 연주의 훌륭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제 새로운 음반을 내놓을 때가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바로 서울시향의 말러 연주 역사를 만든 인물이 정명훈으로, 2006~2015년 음악감독으로 재직할 때 말러 교향곡 1·2·5·9번을 녹음했다. “말러의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지휘자가 됐다”고 고백하기도 했던 정명훈은 올해부터 KBS교향악단과 본격적으로 말러 교향곡 연주에 나선다. 교향곡 2번 ‘부활’에 이어 3월 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한일 수교 60주년 기념 연주회에서도 KBS교향악단과 일본 도쿄 필하모닉의 합동 오케스트라와 함께 교향곡 1번 ‘거인’을 연주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