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도에서 전해온 전도 이야기(29) “주님, 거시기 좀 주세요”

입력 2024-12-30 15:36
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어제 2024년도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1년이 쏜살같이 지나갔고 낙도에 영혼 구원을 목표로 달려온 한 해를 돌아보면서 모든 분들이 그러하듯 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쉬움만 떠오르고 사역의 결과를 내놓으라 하면 부끄럽기만 합니다.

어부 남편들이 아내에게 “어이, 거시기 주게” 이러면 호미도 주고 칼도 주고 망치도 주고 정확하게 남편이 원하는 것을 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시기’는 200가지의 뜻이 있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정확하게 물건을 건넬 수 있는지 신기합니다. 그 이유는 오래도록 같이 일하고 생활하면서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안다는 것입니다.
전도한 어부들이 추운 바다에 나가 목숨 걸고 힘들게 잡은 고기를 연말이라며 목사에게 한 상자를 가져왔습니다. 교회 옥상에서 생선을 말리고 있습니다.

농담 같은 말이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님, 저는 지금 거시기가 필요합니다” 하고 기도해도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은 나의 아픔이나 필요함을 다 아시고 채워주심을 믿습니다. 마치 아기의 마음을 엄마가 알듯 어부 부부의 의사소통을 옆에서 보면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그 대상자의 마음을 저렇게 알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가려운 곳을 긁어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엉뚱한 곳을 긁어 주면 아마 짜증 나서 전도를 받는 상대방은 금세 자리를 피하려고 할 텐데 우리는 어부들에게 정확하고 쉽게 전하는, 무엇인가가 2%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어부들도 여기까지 살아오면서 소문을 듣긴 들었는데 막상 복음을 들어도 복된 소식으로 느껴지지 않기에 그들을 시원하게 마음을 열어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한 해를 뒤돌아보면서 많은 어부들과 대화하고 도움도 주고 교제도 제법 가졌는데 아직도 돌같이 단단한 저 바다 사람들의 영혼 속에 십자가 사랑을 심어주지 못하고 행여나 헛수고하지는 않았는지 가끔은 힘이 빠지고 좌절이 밀려올 때가 있어서 지난 1년을 복기해 보면서 새로운 계획도 세우려고 합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같이 교회가 없는 섬마을에 교회를 세워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며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어부들은 큰 돌담을 막아놓은 듯 무조건 교회를 싫어하며 한결같이 복음에 어깃장을 놓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부들을 찾아 복음의 소중함을 전하기 위해 그분들을 섬기고 받들면서 물질과 시간을 바쳤고 또 눈물이라는 전도의 학습비를 분에 넘치도록 지불하기도 했습니다.
교도소를 제 집처럼 들락거리던 임성진 형제가 교회 커피 봉사 담당을 거의 2년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임 형제는 그 봉사 일을 뺏기지 않으려고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지형적으로 큰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비난도 보너스로 받았고 오래된 트럭이 털털거리며 길바닥에 멈춰 설 때는 불평을 늘어놓기도 하면서도 ‘너는 전도하는 도구다’ 하며 참았습니다. 40년 전 먼저 개척한 인근 동역자 선배들의 과도한 견제도 힘내라는 격려로 여기면서 혼자 씩씩한 척하면서 넘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저를 향해 어부들은 ‘우리는 쉽게 전도하지 못할 것’이라며 조롱도 했습니다.

온갖 덤터기와 누명을 뒤집어 써봤고 모함과 오해까지도 받았지만 섬 목회라는 고상한 그림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칼바람이라는 이름으로 살을 베어 가는 폭군으로 변해 며칠 전 근근이 마련한 1만5000원짜리 모자를 낚아채더니 순식간에 바다에 빠뜨리기도 했습니다. 야속한 찬 바람은 어부든 목사든 가리지 않고 죽일 듯 달려듭니다.

그래도 목회라는 그 이름이 저를 지탱하게 했고 만약 제가 이런 목회를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께서 못 난 저를 등 떠밀어 주었기에 오늘 여기 이런 모습으로 서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섬마을 12월 마지막 예배를 드리면서 함께 예배드리는 어부들이 이제는 의젓한 성도님들이 되셔서 저를 ‘우리 목사님’이라고 불러주시니 그저 내 잔이 넘칠 뿐입니다. 어부 성도들은 십자가를 들이미는 저를 울리고 웃게 하던 분들입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