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공연계를 달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신작’(이하 창작산실)이 31개 선정작 가운데 6편을 먼저 선보이며 포문을 연다. 올해 17회째인 창작산실은 1~3월 연극·창작뮤지컬·무용·음악·창작오페라·전통예술 6개 기초 공연예술 분야의 우수 신작을 선보인다. 올해는 연극 7편, 창작뮤지컬 7편, 무용 7편, 음악 2편, 창작오페라 3편, 전통예술 5편이 무대에 오른다. 관객과 먼저 만나는 6편은 창작뮤지컬 ‘무명호걸’, 무용 ‘당신을 배송합니다’, 창작뮤지컬 ‘오셀로의 재심’, 연극 ‘기존의 인형들 : 인형의 텍스트’, 연극 ‘벼개가 된 사나히’, 연극 ‘목련풍선’ 순으로 개막한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르는 창작뮤지컬 ‘무명호걸’(1월 3∼12일 대학로 인터파크 서경스퀘어 스콘 2관)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무협 판타지극이다. 임진왜란 초기 선조는 한성을 떠나 평양을 거쳐 의주까지 도망갔다. ‘무명호걸’에서는 조선의 왕이 왜구에게 죽음을 맞는다는 상상으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무명호걸’ 제작사 주다컬쳐의 이규린 대표는 “난세에 항상 서민들이 나라를 지켜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무명의 영웅들이 힘을 합쳐 나라를 지키는 데 일조했다는 이야기”라면서 “이름이 남겨지지 않은 사람들의 삶도 가치 있고 의미 있다는 주제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무명호걸’은 서경스퀘어 스콘 2관에서 공연한 뒤 서울시 중구 CKL스테이지로 장소를 옮겨 2월 4∼19일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무용 부문의 첫 작품 ‘당신을 배송합니다’(1월 4~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는 백주희 안무가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생활고로 모 배송업체 배송 노동자로 일했던 경험을 소재로 했다. 백주희 안무가는 “배송 노동자로 일할 때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했다”면서 “빠른 배송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배송 노동자의 삶을 소개하고 그들이 우리 속에서 그리고 사회 공동체 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함께 고민해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창작뮤지컬 ‘오셀로의 재심’(1월 8∼26일 에스에이홀)은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소재로 재창작한 작품이다. 부하 이아고에게 속아 아내 데스데모나를 의심해 살해한 오셀로를 재판정에 세우는 상황을 가정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박새봄 작가는 “‘오셀로’는 전통적으로 남성들에 의해 해석됐다. 무고한 희생자 역할에 그쳤던 데스데모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소개했다.
연극 ‘기존의 인형들 : 인형의 텍스트’(1월 10~19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은 퍼펫 디자이너인 인형작업자 이지형이 만든 인형에서 시작된 세 편의 단막극으로 구성됐다. 이지형은 2018년부터 인형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연출가와 안무가 등 창작자들과 협업하는 ‘기존의 인형들’ 시리즈를 선보여왔다. 비인간인 ‘인형’을 ‘조종’이라는 인간중심적인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관계 맺기를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의 인형들 : 인형의 텍스트’는 극작가 안정민, 신효진, 김연재와 협업해 희곡을 개발했다. 이번 공연에서 직접 연출도 맡은 이지형은 “창작자들은 인형에 대한 아무런 정보없는 상태에서 내가 제안한 인형으로 장면을 구성하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관객은 인형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정년이’ 열풍으로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연극 ‘벼개가 된 사나히’(1월 11~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연극 창작진과 여성국극이 만난 독특한 결과물이다. 동시대 여성국극의 존재 방식을 고민해온 여성국극제작소가 극작가 고연옥, 연출가 구자혜와 협업한 이 작품은 남역 배우를 꿈꾸며 여성국극단에 입단한 ‘소년’의 여정을 통해 전통적인 젠더 수행을 교란하는 것이 특징이다. 원로 여성국극 배우 이소자, 이미자도 출연한다. 소년을 연기하는 3세대 여성국극 배우이자 여성국극제작소의 박수빈 대표는 “‘벼개가 된 사나히’는 성별과 섹슈얼리티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품이다. 여성국극에 대한 편견을 무너뜨리고 관객과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연극 ‘목련풍선’(1월 18~26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소외된 사람들에 주목해온 배해률 극작가가 윤혜숙 연출가와 함께 선보인다. 배해률 작가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사고를 소재로 한 ‘7번 국도’를 비롯해 현재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과 혐오, 폭력 문제를 주로 다룬 희곡들을 선보여 왔다. 이번 작품은 화학공장 인근 마을의 외딴집을 배경으로 가족의 균열과 회복을 다뤘다. 배해률 작가는 “7번 국도‘를 2018년에 쓰고 ‘목련풍선’을 2022년쯤에 썼다. 시간이 지났지만 어떤 죽음들은 계속해서 매도당하고 잊혀진다는 점이 두 작품을 연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