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대에 오른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놓고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계기로 당을 재정비해 민심 이반 수습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1호 당원’인 윤 대통령을 엄호해야 한다는 강경 지지층 목소리에 적지 않은 의원들이 동조하면서 쇄신의 동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은 미디어특별위원회가 지난 27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 입장문을 보도자료 형태로 배포한 문제로 내홍이 빚어졌다. 당시 변호인단은 검찰의 공소장을 “더불어민주당 내란진상조사단 발표를 그대로 인용하다시피 한 것”이라고 평가 절하하는 입장을 냈는데, 이를 당 차원에서 홍보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에 친한(친한동훈)계 원외 위원장들을 중심으로 “당이 김 전 장관의 확성기냐”는 반발이 이어졌다. 인천 서갑 당협위원장인 박상수 전 대변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당이 왜 김 전 장관과 2인3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류제화 세종갑 당협위원장도 “당이 대통령과 깨끗이 절연해도 시원찮을 판에 ‘피고인 김용현’의 입장을 대변하다니 도대체 민주당과 싸워 이길 생각이 있기나 한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이상휘 미디어특위 위원장은 “(박 전 대변인 등의 비판은) 사익을 위해 국민을 버리는 ‘소탐대실’ 주장”이라며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해 국민의 알 권리와 민주적 절차를 도외시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또 “허위 보도와 가짜뉴스에 기반한 탄핵 사유들이 여과 없이 성급한 정치적 결정으로 이어지는 사태를 막는 게 대통령을 배출한 국민의힘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29일 통화에서 “윤 대통령 수사나 재판 관련 언급을 안 하는 게 당의 기본 원칙이지만, (김 전 장관 측 입장문 배포는) 가짜뉴스 대응 차원에서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 공소장을 ‘가짜뉴스’ 취급한 김 전 장관 측 주장을 여당이 옹호한 셈이다.
탄핵 반대 지지층을 껴안으려는 움직임도 계속되고 있다. 윤상현·김민전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윤 의원은 연단에 올라 “당이 배출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막아내지 못했다. 존경하는 애국 시민들께 사죄하겠다”며 큰절을 했다. 경남 지역의 한 의원은 “당원들이 ‘왜 국민의힘 의원들은 광화문 집회에 안 나타나느냐’는 하소연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한 여당 중진 의원은 “8년 전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민주당이 보수를 거의 궤멸시키려고 했던 것에 대한 학습효과”라며 “대통령 때문이 아니라 보수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30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권영세 의원의 비대위원장 임명안을 추인할 예정이다. 현 정부 들어 여당의 다섯 번째 비대위가 출범하는 것이다.
이종선 이강민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