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무속에 기댄 몽상의 끝

입력 2024-12-29 19:03

흔히 ‘사주팔자’라고 불리는 사주명리학에서는 태어난 ‘연월일시’로 개인의 미래를 예측한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사람의 운명을 예측하는 두 가지 기준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타고난 ‘명(命)’이다. 바꿀 수 없는 한 개인이 타고난 정해진 그릇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또 다른 하나는 ‘운(運)’이다. 운은 말 그대로 타고난 ‘명’의 움직임, 흐름, 변화를 말한다.

아무리 타고난 삶이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어려워 보여도 누구에게나 어떤 시기에는 운의 변화로 인하여 기회가 오고, 때로는 오랜 시간 노력하고 추구해 오던 꿈과 이상이 이루어지고 열매를 맺는 시기가 온다는 게 ‘사주팔자’의 결론이다. 따라서 설령 운명이란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더라도 때를 기다리며 꿈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은 채 사주팔자만 탓하면 열매가 아니라 패가망신만 남을 뿐이다.

요즘 한덕수 권한대행 부인의 무속 논란으로 시끄럽다. 무속에 심취해 있는 한 대행 부인이 김건희 여사 모녀와 무속으로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혹이다. 돌아보면 현 정부 들어 무속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천공, 건진법사가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더니, 최근에는 미륵보살 명태균씨에 이어 12·3 내란 사태의 비선 의혹 안산보살 노상원씨까지.

그 누구보다 노씨가 압권이다. 노씨는 군에 있을 때부터 사주명리학 등을 공부했다고 한다. 잘나가던 노씨는 육군정보학교장 재임 시절 여군 교육생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군에서 쫓겨났다. 이후 죽은 아이의 혼이 깃든 무녀라는 의미의 ‘아기보살’ 무당과 함께 경기도 안산에 점집을 냈다. 노씨는 ‘사주팔자’와 ‘점’이 결합했으니 운명 예측이 백발백중이리라 믿었으리라.

이런 믿음으로 노씨는 천지개벽을 꿈꿨다. 수첩에 계엄 계획을 기록했다.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계엄 직전 전북 군산의 무속인 ‘비단아씨’를 수차례 찾아가 계엄의 성공 가능성을 에둘러 확인했다. 그렇게 노씨는 12·3 내란에 적극 가담했다. 그러나 노씨가 무속적 성공을 굳게 믿었던 내란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노씨는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지금쯤 노씨는 자신의 점괘가 한낮 몽상에 불과함을 깨닫고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까, 아니면 버티는 대통령이 자신의 점괘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을까.

‘伏戎于莽 升其高陵 三歲不興 (복융우망 승기고릉 삼세불흥, 풀숲에 병장기를 몰래 숨겨 놓고 높은 언덕에 올라 망을 보면 삼년이 지나도 흥할 것이 없다)’ 동양 운명학의 원전인 ‘주역’에 나오는 구절이다. ‘치졸한 계략과 암수를 사용해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지위에 오르려 하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려 하면 세 번의 기회에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무속에 기대어 사사로운 이득을 취하기 위해 치졸한 계략과 암수로 반란을 획책한 세력에게 남는 건 처참한 몰락뿐.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