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난 H-1B 비자(VISA) 신봉”… 머스크 손 들어줬다

입력 2024-12-29 09:07 수정 2024-12-29 10:28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전문직 외국인 비자 정책을 두고 벌어진 진영 내 다툼에서 정부효율부 수장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손을 들어줬다. 해외 전문 인력에 대해서는 비자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머스크와 ‘미국인 일자리’가 우선이라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이 충돌한 가운데 트럼프가 머스크를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보수 진영 내 실용과 이념의 대결에서 트럼프가 실용을 추구하는 쪽의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28일(현지시간)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고숙련 외국인에게 부여되는 비자인 ‘H-1B’의 신봉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내 부동산에 많은 H-1B 비자 (노동자)를 가지고 있다. 나는 H-1B의 신봉자였다”며 “H-1B비자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항상 비자를 좋아해 왔고, 항상 비자를 찬성해왔다”고 덧붙였다.

트럼프의 이번 발언은 정부효율부 공동수장으로 지명한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가 전문직 외국인 비자 프로그램을 옹호하면서, 이민에 반대하는 MAGA 지지자들이 격한 논쟁을 하는 와중에 나온 것이다.

해당 논쟁은 트럼프가 지난 22일 인도계 IT 전문가 스리람 크리슈난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의 인공지능(AI) 수석 정책 고문으로 임명하면서 촉발됐다. 크리슈난은 지난달 소셜미디어 엑스에 “기술직 이민자들에 대한 영주권 상한선을 없애는 것은 대단한 일이 될 것”이라고 적었는데, MAGA 세력은 이를 문제 삼았다.

극우 활동가 로라 루머는 크리슈난 기용에 대해 “그는 영주권 제한을 없애 외국 학생들이 미국에 오게 하고 미국 학생들에게 주어져야 할 일자리를 빼앗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트럼프의 미국 우선 정책에 직접 반대하는 견해를 공유하는 좌파 인사들이 트럼프 행정부에 임명되고 있는 것이 매우 걱정스럽다”고 했다. 트럼프의 측근인 스티브 배넌도 자신의 팟캐스트 ‘워룸’에서 “H-1B 비자는 미국 시민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 외국에서 온 계약직 종업원들에게 주고 돈을 덜 지불하려는 사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H-1B 비자를 지지하는 실리콘밸리 인사들을 ‘올리가르히(oligarch·러시아 재벌)’라고 비난했다.

IT업계를 대변하는 머스크는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그는 지난 27일 엑스에 “내가 스페이스X와 테슬라, 미국을 강하게 만든 수백 개의 다른 회사들을 구축한 수많은 중요한 사람들과 함께 미국에 있는 이유는 H-1B 때문”이라며 “나는 이 문제를 놓고 전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논쟁이 격해지자 “엿이나 먹어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크리슈난과 같은 인도계 출신인 라마스와미도 엑스에 올린 글에서 “최고의 기술 회사들이 미국인보다 외국에서 태어난 엔지니어를 고용하는 이유는 미국인의 타고난 IQ 부족 때문이 아니다”며 “우리의 미국 문화는 탁월함보다는 평범함을 너무 오랫동안 숭배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자보다 졸업 파티 여왕을, (우등생인) 졸업생 대표보다 운동을 많이 하는 남학생을 더 찬양하는 문화는 최고의 엔지니어를 배출해내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2기 백악관의 ‘AI·가상화폐 차르’에 임명된 데이비드 색스 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 역시 크리슈난을 옹호했다.

양측의 갈등이 격해진 상황에서 트럼프가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H-1B 비자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이다. 트럼프는 그동안 H-1B 비자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혀왔다. 2020년 1기 재임 당시에도 H-1B 비자를 제한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2기 취임을 앞두고서 진영 내 다툼이 벌어지자 H-1B 비자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밝힌 것이다.

CNN은 “머스크의 편을 든 트럼프의 발언은 트럼프가 기술 거물(머스크)과 가까워진 또 다른 사례”라고 논평했다.

H-1B 비자 프로그램은 매년 6만5000명의 고숙련 근로자가 특정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 미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분야의 전문 직종에 적용된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