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최고의 소리꾼’ 안숙선(75) 명창도 시간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안 명창에게는 시간이 흘러도 소리를 이어갈 제자들이 있었다.
지난 28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린 ‘송년판소리’는 2010년부터 출연해온 안 명창의 마지막 무대였다. 안 명창은 197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해 200편 넘는 창극과 30회 넘는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 무대에 섰으며,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예술감독을 역임했다. 2010년부터는 ‘송년판소리’ 무대를 도맡아 국립창극단과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국립창극단은 이번 ‘송년판소리’를 안 명창의 소릿길 인생을 되새기는 자리로 준비했다. 유은선 예술감독이 직접 사회를 맡은 이날 ‘송년판소리’에는 안 명창 외에 소리꾼 제자 30명, 고수 2명, 연주자 8명이 출연했다.
막이 오르자 꽃분홍색 한복을 입은 안 명창이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불렀다. ‘쑥대머리’는 춘향이 옥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이몽룡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대목으로, 안 명창만큼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꾼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안 명창은 국립창극단에서 춘향 역을 워낙 많이 맡아 ‘영원한 춘향’으로 불린다. 남원 출신인 데다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춘향가’ 예능보유자이기도 하다. 국립창극단은 이번 공연을 위해 최근 안 명창이 ‘쑥대머리’를 부르는 모습을 홀로그램으로 제작했다. 국립극장이 공연에 홀로그램을 활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관객은 홀로그램으로 만나는 안 명창의 소리에 신기해하는 반응이었다.
이후 안 명창의 제자들이 ‘수궁가’ 중 ‘고고천변’, ‘흥보가’ 중 ‘박 타는 대목’, ‘춘향가’ 중 ‘사랑가’, ‘적벽가’ 중 ‘새타령’, ‘심청가’ 중 ‘젖동냥~추월만정’ 등 다섯 바탕의 주요 눈대목을 독창·합창·입체창까지 다채로운 구성으로 선보였다.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안 명창의 소릿길을 다양한 사진과 영상으로 살펴본 뒤 모든 제자와 함께 민요를 부르는 엔딩이었다. 안 명창이 국립창극단 중견단원 정미정과 국립민속국악원 국악연주단 예술감독 유수정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에 오르자 유은선 감독 등 국립창극단 관계자들이 15년간 송년판소리를 함께한 것에 대한 국립극장의 감사패와 꽃다발을 전달했다. 안 명창이 감회가 남다른 듯 눈시울을 붉히며 “감사합니다” 인사하자 제자들의 상당수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어 안 명창은 감사패에 대한 답가로 평소 즐겨 부르던 단가 ‘벗님가’를 불렀다. “어화세상 벗님네들 백년 영화가 그 얼만고. 북망산 묻힌 벗님 영화 마다고 묻혔든가~(후략)”로 시작하는 ‘벗님가’를 들으며 객석에서는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오고 눈가를 손으로 훔치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민요 ‘동백타령’ ‘진도아리랑’을 부른 안 명창을 향해 객석에서는 박수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