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모한 싱 인도 전 총리가 26일(현지시간) 9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AP, 로이터 등에 따르면, 싱 전 총리는 이날 자택에서 갑작스럽게 의식을 잃고 뉴델리에 있는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을 거뒀다. 그는 최근 노인성 질환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싱 전 총리는 인도 북부 펀자브주의 시크교 도시인 암리차르 출신으로 인도가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최초의 비힌두교 총리였다. 인도 내 시크교도 인구는 2%에 불과하다.
싱 전 총리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경제학자로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재무장관을 지내면서 인도를 외국 무역과 민간 투자에 적극 개방했다. 총리 재임 시절인 2004∼2010년에는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도 연평균 8%가 넘는 기록적인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
싱 전 총리 재임 시기인 2009년 인도는 러시아, 중국, 브라질, 남아공과 함께 브릭스(BRICS) 창립 멤버로 참가해 2010년 정식 회원국이 됐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싱 전 총리는 인도 경제를 자유화하고 강력한 경제 성장기를 거치며 인도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인도를 경제 강국으로 만든 자유시장 개혁을 도입했고, 파키스탄과의 화해를 추진했으며, 인도가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는 토대를 닦았다고 평가했다.
싱 전 총리는 2008년 공식 발효된 미국-인도간 핵협력 협정도 체결했다. 이 협정은 인도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허용하는 대신 미국으로부터 핵기술과 연료를 제공받는 것으로 처음으로 미국과 민간 핵기술에 대한 평화적 거래가 가능하게 됐다. 이 협정으로 1998년 인도의 핵실험 등으로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는 전환점을 맞았다.
싱 전 총리는 취임 후 파키스탄과 화해를 추구했으나 파키스탄에 기반을 둔 지하디스트 단체가 2008년 뭄바이에서 3일간 테러 공격을 가해 171명이 사망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싱 전 총리는 겸손하고 성실한 이미지로 많은 인도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다만 두 번째 총리 임기 후반에 경제가 침체되고 소속 정당인 국민의회당이 내부 갈등과 부패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비판을 받았고, 2014년 총선에서 나렌드라 모디 현 총리의 인도국민당(BJP)에 참패했다.
모디 총리는 이날 엑스를 통해 고인이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명”이라며 “재무장관 시절을 포함해 우리 경제정책에 강력한 영향을 줬다”고 애도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