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맣게 탄 의자가 소환하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

입력 2024-12-24 17:06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미술관에서는 지난 2022년 제16회 김종영조각상 수상 작가로 선정된 김승영 작가의 ‘수상 기념전’으로 ‘삶의 다섯 가지 질문’전을 하고 있다
김승영 작 '두 개의 의자'. 김종영미술관 제공

김 작가는 오랜 시간 삶에서 피어 오르는 내밀한 감성을 조각, 오브제, 영상, 사진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 설치 작업으로 선보였다. 미술관 측은 “이러한 작품은 일관되게 자신의 심연에서 비롯된 독백을 간명하게 조형화한 것이다. 한마디로 김승영은 작업을 통해 김승영만의 감성이 물씬 풍기는 독백을 통해 ‘낯선 김승영’을 알아가고자 한다. 이번 전시도 이런 선상에 있다”고 밝혔다. .

‘삶의 다섯 가지 질문’은 크게 2개의 질문으로 나뉜다. 하나는 ‘어머니의 기억’에서 비롯됐다. 3층 전시실에는 얼마 전에 타계한 어머니를 기억하는 작품 3점을 선보였다. 소복이 쌓인 재 위에 숯처럼 새카맣게 탄 의자가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더 이상 앉을 수 없는 의자다. 그런데 의자 하나가 다른 의자에 기대어 있다. 이 의자도 머지않아 바닥에 뿌려진 재가 될 것이다. 벽에는 천에 심박 그래프처럼 보이는 선을 보라색 실로 한땀 한땀 수놓은 ‘보라’라는 제목의 작품이 걸려 있다. 이 역시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관련 있다. 작은 모니터에 생전 어머니 모습이 재생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김승영 자신’에서 비롯됐다. 1층 전시실은 2점의 ‘자화상’을 포함한 5점의 영상작품을 전시한다. 3m 60cm 높이 벽에 투사된 느린 동작으로 재생되는 영상 속 인물들은 모두 똑같이 행동한다. 각자 자신을 모델로 찍어 실물 크기로 인화한 사진을 네 모퉁이만 테이프로 붙여 벽에 기대 세웠다. 인화지 무게 때문에, 사진은 여지없이 한쪽부터 떨어지기 시작해서 금방 주저앉는다. 다시 일으켜 세워 붙이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5장의 거대한 인화지가 주저앉는 순간 생기는 소리 역시 영상에 맞춰 느리게 재생되는데 마치 거대한 건물이 무너질 때 나는 소리처럼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한편 김승영의 2점의 ‘자화상’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하나는 1999년 첫 번째 전시 때 그이고, 이를 바라보는 다른 하나는 2024년 지금의 그다.

이 두 개의 질문은 2층 전시실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자개로 장식한 의자 6개를 펼쳐 놓은 작품 ‘장님을 이끄는 장님’-피터 뷔뤼헬(Pieter Brueghel de Oude)의 같은 제목의 작품을 연상시킴-과 또 다른 영상작품 ‘자화상-기억(1963~2024)’으로 섞여 하나가 된다. 이 ‘자화상’은 1층에 전시한 ‘자화상’과 달리 김승영이 그 동안 수많은 만남 중 특별히 기억하는 사람들을 영화의 엔딩 크레딧 처럼 제작했다.

한편 김종영 조각상은 우성 김종영 기념사업회가 교육자로 헌신한 김종영 선생의 유지를 기리고자 1990년부터 격년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조각가와 현저한 공로가 있는 조각 단체를 선정해 시상한다. 전시는 내년 1월 5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