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오페라 공연 역사상 세계 최대 규모를 내세운 코엑스 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이하 ‘투란도트’)가 개막 첫날부터 파행으로 얼룩졌다.
2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D홀에서 열린 ‘투란도트’ 개막 공연은 애초 예정됐던 오후 7시 30분보다 23분이 지나서야 겨우 시작했다. 수백 명의 관객이 로비에서 예매한 티켓을 받지 못해 입장을 못 했기 때문이다. 티켓, 프로그램, 주차정산 관련 부스가 제대로 구분이 안 되는 데다 안내원과 스태프까지 적어서 로비는 혼잡함 그 자체였다. 제작비 200억원, 티켓 최고가 100만 원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준비가 부족했다.
무엇보다 6800석으로 잡아놓았던 객석을 4000석으로 줄인 뒤 사전 고지를 하지 않았던 탓에 관객은 현장에 와서야 자신의 좌석이 변경된 것을 알았다. 티켓 판매가 저조해 빈 좌석을 줄이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주최 측이 자의적으로 변경한 좌석을 받거나 ‘아무 데나 앉으라’는 안내를 받았다. 결국, 일부 관객들은 환불을 약속받은 뒤 발길을 돌렸다. 홀에 들어온 관객도 공연 지연과 함께 로비에서 들리는 고성으로 웅성거렸다.
우여곡절 끝에 공연이 시작했지만 ‘투란도트’의 문제는 계속됐다. 원래 3단(층)으로 놓을 예정이던 좌석이 단차 없이 깔리다보니 많은 관객이 무대를 제대로 보기 어려웠다. 가로 45m, 높이 17m의 대형 무대는 VIP 좌석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보기 어려운 데다 맨 앞에 기둥까지 있어서 시야를 방해했다. 무대 양 옆에 스크린을 놓았지만 성악가 한두 명만 담을 정도로 작은 데다 노래를 부르는 성악가 대신 다른 성악가를 비추는 경우도 많았다. 이외에 공연 내내 성악이 오케스트라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들리는 등 음향 조정이 좋지 않았다.
박현준 총감독이 맡은 연출 역시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제작사는 공연 전부터 이번 ‘투란도트’가 LED를 활용한 ‘황금 궁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고 강조했었다. 실제로 무대에 황금색 기둥들과 황금색 대형 황소 조각 8개가 자리 잡은 가운데 뒤편 영상으로 황금 궁전 등의 이미지가 투사됐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동양과 서양의 요소가 애매하게 뒤섞인 데다 완성도 역시 높지 않았다. 투란도트 공주가 사는 나라가 전체주의적 요소가 강한 데도 막연히 ‘천국’으로 묘사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날 공연을 앞두고 이탈리아 출신 연출가 다비데 리베르모어는 한국 언론에 ‘투란도트’ 프로덕션과 결별을 선언하며 그 예술적 결과물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박 감독이 장이머우 연출을 강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투란도트’ 측은 박 감독이 원래 2003년 상암 월드컵 경기장 ‘투란도트’ 버전으로 준비해달라고 요구했었는데, 리베르모어가 듣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박 감독은 장이머우 연출 상암 ‘투란도트’의 총감독이었다. 양측의 갈등과 관련해 이번에 굳이 2003년 상암 ‘투란도트’를 재현할 예정이었다면 리베르모어처럼 국제적인 연출가와 계약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날 공연을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성악가들 덕분이다. 투란도트 역의 소프라노 아스믹 그리고리안, 류 역의 소프라노 줄리아나 그리고리안, 칼라프 역의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는 압도적인 가창력과 표현력을 관객을 사로잡았다. 현재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스타 성악가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